[책의 향기]“푸틴의 트로이목마, 유럽이 문 열어준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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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지 위에 어딘가 씁쓸해 보이는 젊은 남성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짙은 일자 눈썹, 오뚝 선 콧날, 곱게 가르마 탄 머리카락 덕일까. 남성은 미남이다. 하지만 눈은 공허로 가득 찼다. 굳게 다문 입 때문에 표정이 없어 보인다. 색을 칠하지 않고 검은 연필만으로 선을 그려낸 탓에 허무…
세 번의 결혼을 하고 마지막 남편을 떠나보낸 노년의 버나는 크루즈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마주친 남자와 대화를 나누다가 그의 이름을 듣는 순간 그녀는 얼어 버린다. 밥 고엄. 고등학교 동문이자 50년 전 자신에게 성폭력을 가하고 인생을 크게 비틀어 버린 남자다. 순간 버나는 여행을 …
몇 년 전 화창한 봄날, 반려견과 함께 한강공원을 산책할 때였다. 아주머니 한 분이 우리 아롱이를 보더니 “참 예쁘네요. 몇 살이에요?”라며 말을 걸었다. 이것저것 묻던 그는 자신도 반려견 두부와 자주 이곳에 나왔는데, 얼마 전 고령으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했다. 그는 두부가 생각날…
‘한국 SF만의 특징’에 대해 김보영 작가는 제국주의적 우주관의 부재를 말한 적이 있다. 20세기 중반 냉전이 시작되면서 미국과 소련이 군수 경쟁의 일환으로 우주기술 경쟁에 나서고 그 여파로 과학소설이 크게 발전했다. 특히 1969년 미국 우주인들이 먼저 달에 착륙한 이후 영미권 SF…
● 이걸 쓸까 말까? (타라 샤인 지음·솔트북스) “물건이 적을수록 좋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갖고 있다. 새로 사는 것을 줄이고 갖고 있는 것을 현명하게 사용하자는 것이다.” 20년 동안 국제기구에서 자문가로 활동한 환경 과학자 타라 샤인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다. 신간은 우…
● 김섬과 박혜람(임택수 지음·나무옆의자)=사랑과 관계에서 방황을 거듭하면서도 끝내 자신들의 인생행로를 찾아가는 두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다. 폭력적인 남편의 집착으로 프랑스 생활을 뒤로하고 홀로 한국에 온 박혜람과 동료 소방관의 죽음으로 트라우마를 겪는 한 남자를 사랑한 김섬이 주인공…
수십 년의 세월과 수많은 시행착오 그리고 끈질긴 노력이 필요함에도, 그저 불 위에 올려놓고 굽는 것만 같으니 만만하게 생각하는 탓이다. ‘불에 굽는다’라는 일차원적 조리 과정은 단순해 보인다. 하지만 가공되지 않은 순수함은 화려한 겉치레보다 훨씬 이루기 힘든 경지다. 뉴욕 패션공과대…
결혼식을 올리지 않아도 부부가 될 수 있다. 졸업식에 가지 않아도 학교를 졸업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이 이런 의례에 집착할까. 세계 많은 지역에서 불타는 숯불 위를 걷거나 높은 나무에서 뛰어내리는 등의 독특한 의식이 열려 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입는다. 이런 무모한 일을 왜 …
친구에게 선물로 받은 새 신발을 신고 걸어가던 토끼. 달려오던 한 아이가 흙탕물을 튀겨 토끼의 신발은 더러워진다. 결국 토끼는 두 귀로 땅을 딛고 물구나무서기를 하며 신발을 지켜낸다. 거꾸로 바라보는 세상은 생각보다 재밌다. 이름도 이제 토끼가 아닌 ‘끼토’다. 하지만 남들과 다른 행…
요즘 해외여행을 가도 쇼핑의 재미가 예전만 못하다. 스마트폰 하나면 이미 전 세계 각양각색의 물건을 구할 수 있어서다. 물건을 집을 때마다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생각이 있다. ‘어차피 온라인에서 더 싸게 팔겠지’. 발굴의 재미가 사라졌다. 책은 세상이 빠르고 편리해지면서 유실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