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 11월23일 미국 워싱턴의 백악관. 빌 클린턴미국대통령이 회담장으로 들어서는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을 반갑
92년 대선 당시 김영삼(金泳三)후보의 당선을 위한 군인사들의 지원작전인 ‘100계획’을 가동하며 군부와 손을
하나회 숙정작업이 시작된 93년 3월8일부터 4월21일까지 불과 40여일 동안 장성 59명에 대한 전역 진급 보직이동 등
국가와 민족을 위해 대통령 각하와 소장님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국정 전반에 막강한 영
천용택(千容宅)국방부장관은 2월 말 신정부 출범 직전 김대중(金大中)대통령 당선자에게 ‘신국방―안보정책’이
93년 7월16일 서울 서소문 옛 대검청사. 감사원의 율곡사업(한국군 전력증강사업)에 대한 특별감사결과 무기 관련업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과 이회창(李會昌)한나라당 명예총재 그리고 권영해(權寧海)전국방부장관. 이들은 문민정부의
93년 4월22일 오후 3시가 막 넘은 시각,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 모 방송사가 군 인사비리를 터뜨릴 것이라는 첩보가
군 인사비리사건 당시 일부 장교들은 ‘지탄의 대상이었던 장성들이 거꾸로 칼자루를 쥐고 휘두르는 상황이 벌어졌
이양호(李養鎬)국방부장관이 재임 20개월째를 맞은 96년 7월15일. 국방부는 뜻밖에 ‘사조직 금지 입법 추진’이란
문민정부 초기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차남 현철(賢哲)씨는 군내 인사로부터 ‘문제가 되는 사조직’이란 제목의 보
최승우(崔昇佑)장군은 사단장 시절 ‘부대에 떨어진 낙엽을 쓸지말라’고 말했을 정도로 낭만적인 지휘관으로 유명
문민정부가 출범한 지 5개월이 채 안된 93년7월 중순 국군기무사령부는 비상상황에 돌입했다. 교육사령부 참모장
백승도(白承道)대령은 2월 말부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육군담당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백대령이 청와대에 들어
93년 4월2일 오전 국방부와 합참의 장교들이 모여 사는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 군인아파트촌. 여느날과 마찬가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