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일자로 막을 내린 ‘김지하와 그의 시대’를 보신 각계 인사들의 반응을 모았습니다. 균형 잡힌 역사교육에 대한 강조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답해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성원해주신 독자 여러분께도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게재는 무순입니다. <편집국 종합> 》…
석방 후 김지하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면에선 감옥보다 더한 고행(苦行)의 시작이었습니다. 누구보다 혹독한 감옥생활을 했지만 김지하는 초인적 의지로 버텨냅니다. 그러나 그는 바깥세상이 또 다른 감옥이라는 것을 이내 깨닫게 됩니다. 그는 출옥 직후 숱한 지인들과 후…
서울구치소 2층 맨 끝 한 귀퉁이에 김지하의 방이 있었다. 창밖을 내다보면 인왕산과 무악재가 훤히 보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고 얼마 후 김지하는 김재규의 부관이었던 박선호(중정 의전과장)를 교도소에서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 김지하는 “그와 운동시간에 만나 몇 마디 …
1975년 3월 다시 감옥으로 들어간 김지하의 옥중 생활은 79년 10월 만 4년 8개월째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해 여름부터 김지하는 100일 참선을 시작했다. 하루에 30분 운동하는 것 이외에는 깨어서는 물론이고 잘 때도 가부좌를 틀고 잤다. 얼굴은 거의 ‘해골바가지’를 연상시킬 정…
김재규 재판은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12월 4일 첫 공판 후 18일 결심 공판까지 14일 동안 8명의 피고인에 9차례 공판이 진행됐다. 거기다 결심 후 이틀 만인 12월 20일 사형이 선고됐다. 변호를 맡았던 강신옥 변호사는 “역사적인 재판이 역사상 유례없는 졸속이었다”며 “항소…
육군본부 지하벙커에서 열린 국무회의가 시작되기 전 최규하 국무총리가 김계원 비서실장에게 “임시국무회의 소집의 사유를 말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묻자 옆에서 듣고 있던 김재규가 반발했다. “비서실장이 각의에 무엇 하러 들어갑니까? 그리고 무슨 이야기를 해요.” 김 실장의 회고다. …
김계원 비서실장은 총에 맞은 대통령의 시신을 업고 병원으로 달려간다. ‘안가에서 멀지 않은 병원으로 가는 그 시간이 왜 그리 길게 느껴졌는지 도중에 각하의 생사의 촌각이 달려 있었다. 내 무릎에 기대 누운 각하의 숨결이 약해져 가는 것을 느끼지 못하리만치 서둘렀다. 병원 입구 검…
다음은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의 수사결과 발표다. ‘김계원은 (전기 스위치를 찾겠다고) 현장을 피신하여 밖으로 나왔으며 방 안에서의 총성을 신호로 중정 의전과장 박선호는 응접실에 대기 중이던 경호처장 정인형과 경호부처장 안재송을 사살했으며 수행비서관 박흥주 대령, 경비원 이기주,…
다시 정승화 육참총장의 회고다. ‘김정섭과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김재규가 와이셔츠 바람으로 불쑥 나타났다. 7시 10분께였다...
79년 10월 26일 저녁 6시 5분. 궁정동 안가 구관으로 박 대통령이 도착했다. 대통령을 수행한 경호팀은 안가에 도착함과 동시에 경호업무를 중앙정보부에 넘기게 되어 있었다. 중정 사무관의 안내를 받아 차지철 실장과 함께 방으로 들어선 박 대통령을 김계원 비서실장과 김재규가 일어나 …
김계원 비서실장은 1979년 10월 26일 오후 공식 일정을 모두 마친 대통령이 1층 집무실에서 2층 사저로 올라가는 것을 확인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최영희 장군(당시 유정회 국회의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막역한 사이였다. 최 장군이 “저녁을 사겠다”고 제안하지만 김 실장…
1979년 10월 26일은 구름 한 점 없이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이 청명한 날이었다. 박 대통령은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에 갈 예정이었다. 비서진은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 준비사항을 점검했다. 삽교천 방조제는 삽교천 하구를 가로막은 인공 담수호로 충청남도 4개의 시군 지역을 대단위 전천후…
이즈음 박정희 대통령의 고민도 깊었다는 것은 여러 사람의 증언을 통해 확인된다. 1970년 겨울 청와대에 들어가 79년 10·26사태 때까지 사회담당특보와 대변인으로 일한 임방현 씨의 증언(구술 ‘내가 겪은 박정희 정부’ 한국정신문화연구원+2011년 조찬강연)이다. ‘78년 유신…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부산지역에 계엄령이 선포된 직후인 10월 18...
동아일보 1979년 10월 18일자는 계엄령이 내려진 부산 시가지 모습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18일 오전 부산시청 경남도청 전화국 등 34개 관공서와 신문 방송 등 언론기관 정문 앞에는 착검한 M16을 집총한 완전 무장 군인들이 삼엄한 경비에 임하고 있다. 학생들의 소란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