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청춘들도 아프다고 아우성이지만 1960년대 청춘들은 더했다. 늘 돈이 없어 끼니를 굶을 때도 많았다. 김지하도 대학교 때 ‘거지’였다고 한다. 집에서 돈이 오지 않을 때, 술은 마시고 싶은데 물주가 없을 때 마음씨 좋고 여유가 있어 보이는 친구들에게 손을 벌리곤 했다는 것이다. …
죽산은 한국에서 ‘진보’라는 말을 처음 쓴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다. 1956년 11월 진보당 창당대회 개회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일을 없애고 모든 사람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고...
4·19 직후인 1960년 12월 동아일보는 ‘세모비정(歲暮非情)’이란 제목의 12회에 걸친 시리즈물에서 1년 중 가장 살기 힘든 겨울을 힘겹게 이어가는 서민들의 삶을 생생하게 소개하고 있다. ‘염소장수’ ‘품팔이군’ ‘군밤장수’ ‘빈민굴’ ‘바가지장수’ ‘구두닦이’ ‘노점음식점’ ‘…
김지하는 59학번이다. 그는 본래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환쟁이는 가난하다’는 말을 청소년 시절부터 이골이 나게 들어 그림과 학문의 길을 병행할 수 있는 길이 없을까 고민하다 서울대 미학과에 입학했다고 한다. 그의 꿈은 장차 교수가 되는 것이었다. 그의 말이다. “…
‘이철 사형! 유인태 사형! 김병곤 사형! 나병식 사형! 여정남 사형! 김지하 사형! 이현배 사형!’ 침 삼키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깊은 늪과 같이 적막하던 법정에 검찰관의 긴장된 목소리가 터져 나오자 방청석에서 낮은 비명이 새나왔다. 1974년 7월 9일 서울 용산구 육군본…
시 ‘타는 목마름으로’를 썼을 때 김지하는 수배 상태였다. 1973년 겨울 어느 날 여관방에서 자고, 다음 날 새벽 친구 집으로 도피하기 위해 밖으로 나섰을 때, 누군가 벽에 분필로 써 놓은 ‘민주주의 만세’라는 글귀를 보았다는 것이다. 그는 하루 종일 머릿속으로 이 글귀를 읊조리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