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는 재판부 기피신청을 한 75년 5월 19일부터 1년 반에 걸쳐 재판을 받았다. 김지하의 말이다. “나는 이미 목을 떼서 감방에 두고 왔기 때문에 두려움은 별로 없었다. 다만 불쌍한 사람은 아내였다. 재판하는 날은 그동안 얼굴을 보지 못한 가족들 만나는 접견일이기도 했다. 아…
김지하 옥중 양심선언의 충격이 채 가라앉기도 전인 1975년 8월 17일 또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이 터지니 장준하 선생의 추락사였다. 그는 재야를 중심으로 유신헌법 개정 100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해 1974년 4월 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아 …
유신 때 학교를 다녔던 지금의 50대 이상은 70년대 학교와 사회 분위기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혼식) 도시락 검사에서부터 국민교육헌장 외우기, 반공 웅변대회, 학도호국단 등 나라 전체가 ‘병영’처럼 답답했던 시절이었다. 지금 젊은이들은 기막혀하겠지만 부모세대 때에는 남자…
1975년부터 시작된 반짝 경제호황으로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향락 산업도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룸살롱’ 접대문화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도시 뒷골목에는 사창가가 늘어났다. 급격한 산업화와 농촌공동체 붕괴가 이루어지면서 ‘무작정 상경’의 시대 그 틈바구니 속에서 몸과 마음과 영혼이 …
1975년부터 한국경제는 미증유의 호황을 맛보게 된다. 1973∼1974년에 기름값이 4배로 오르는 1차 오일쇼크를 경험하면서 한국 경제의 허약함에 너나없이 절망하는 목소리가 팽배해 있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뜻하지 않은 ‘달러 박스’가 등장하니 바로 ‘중동 특수’였다. 1960년…
서울구치소에서는 대대적인 색출작전이 벌어졌다. 구치소 내 거의 모든 교도관이 정보부로 끌려갔다. 다시 전병용 교도관의 회고다. ‘예상했...
전병용 교도관이 들고 나온 문건들은 그날로 김지하 측근들에게 넘겨졌다. 당시 민청학련 사건으로 수배 중이던 조영래가 문건을 건네받아 정리하는 일을 맡았다. 조영래의 손이 닿은 원고가 다시 김지하 손에 들어가면 김지하가 이를 다시 검토해 되돌려 보내는 식이었다. 다시 전 교도관의 …
기자는 이번 시리즈를 위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는 남에게 알려지지 않은 일을 하면서 민주 인사들을 도와준 ‘보석’ 같은 사람이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중에서도 ‘민주 교도관’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이들은 서슬 퍼런 독재시절, 공무원 신분으로 정권유지…
중앙정보부는 1975년 3월 19일 김지하를 반공법 위반 혐의로 서울지검에 구속 송치한다. 2·15조치로 석방된 관련자 중 재구속된 첫 사례였다. 김지하가 다시 감옥에 들어가고 얼마 후인 4월 9일 인혁당 8명에 대한 사형집행이 이뤄진다. 그리고 이틀 뒤 서울대 농과대 교정에서는…
그의 ‘고행’ 시가 말하는 대로 ‘잿빛 하늘 나직히 비 뿌리던 어느 날’ 김지하는 감방 밖에서 누군가 가래 끓는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김지하는 ‘뺑끼통(감방 속 화장실을 뜻하는 은어)’으로 들어가 창에 붙어 서서 “나를 부르는 사람이 누구냐”고 큰 소리로 묻…
김지하는 출옥 직후 제일 먼저 천주교 서울교구청 김수환 추기경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당시를 회고하는 그의 말이다. “방에 들어서자 추기경께서 한 잔의 위스키를 주셨다. 그것을 마시니 머리 속과 온몸이 후끈하게 달아오르며 한결 개운해졌다. 나는 조금 들떠 있었다. 가라앉히지 않으면…
‘(김지하가 풀려난) 1975년 2월 15일은 낮 최고 기온이 영하 7도였다. 며칠째 퍼붓던 눈이 멈추고, 날은 흐렸다. 흐린 날이 저물자 기온은 영하 12도 아래로 떨어졌다. 얼어붙은 거리에 북서풍이 불었고, 그날 밤 서울 영등포구 고척동 영등포 교도소 앞 거리에는 라면 껍질과 연탄…
박정희 대통령의 돌연한 유신헌법 찬반투표 안은 재야는 물론이고 1974년 하반기 야당인 신민당의 움직임에 영향받은 바 컸다. 육영수 여사 서거 일주일 뒤인 8월 22일 서울 명동 예술극장에서는 4월 28일 결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유진산 총재 이후 당권을 겨루는 신민당 전당대회가 …
1974년 8월 육영수 여사 서거로 온 국민이 경악과 비통에 빠진 가운데 석 달 뒤인 11월 15일에는 국민을 다시 충격에 빠뜨리는 일이 생긴다. 바로 북한의 ‘땅굴 발견’이었다. 땅굴은 경기 연천군 고랑포 부근 비무장지대 안에서 북한군이 남쪽으로 파 내려온 지하터널 형태로 파져 있었…
박정희 대통령은 1974년 9월 18일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비롯해 재무 법무 문교 문공 교통 체신 건설 통일원 9개 부처 장관을 경질한다. 19개 부처 중 절반에 해당하는 대폭적인 개각이었다. 그리고 한 달이 채 안 된 10월 8일 청와대에서 신문 방송 등 언론기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