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정착에 성공한 탈북민도, 실패한 탈북민도 존재한다. 그러나 ‘성공적인 정착’이라는 잣대로만 탈북민을 보는 시선은 부족함이 있다. 이에 주성하 기자가 21세기 한반도에서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온 탈북민들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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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준 씨는 생일이 가장 슬픈 날이다. 7월 6일. 그날 마지막 혈육이던 어린 아들이 한국으로 아버지를 찾아오다 2001년 몽골 사막에서 굶주림과 탈진으로 숨졌다. 어머니와 아내, 작은 아들은 1997년 북한의 고난의 행군 때 굶어 죽었다.유 씨는 차인표가 열연한 탈북 영화 ‘크로싱’…
원산항에 한국 쌀이 들어오면 며칠 동안 항구 정문 앞에 화물차량들이 길게 늘어섰다. 대다수가 군용 트럭들이지만 신분을 위장하기 위해 군용 차량 번호를 대충 뻑뻑 지우고 그 위에 민간 번호를 썼다.그렇게 눈속임을 해도 쌀을 접수하러 온 사람들까지 바꿀 수는 없었다. 비록 사복 차림이긴 …
“만남은 우리의 꿈이었다. 만남 이후의 삶은 그려보지 못했다. 함께 산다는 것 이상의 의미는 꿈 너머에 있었다. 만남이 너무나 간절했기에 한 번만이라도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다면 더 원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그 소원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정작 행복하지만은 않다. 아이들은 훌쩍 커버렸…
2006년 10월. 20세 꽃다운 나이의 정은심은 가냘픈 어깨 위에 너무나 무거운 짐을 메고 한국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북한에 남은 어머니와 여동생,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까지 다 데려오려면 큰 돈이 필요했다. 당시 한 명을 한국으로 데려오려면 600만 원이 필요했다.서울 노원구에…
3일째 굶었더니 하늘이 노랬다. 8월 초 삼복더위에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는 방에서 그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김도정 씨가 하나원을 나와 서울 양천의 한 임대주택에 도착한 것은 닷새 전인 8월 3일. 하나원에서 나올 때 초기 정착지원금 300만 원이 든 통장을 받았다.아파트에 도착해…
할아버지는 한국에서 아들 7명을 낳고 6.25전쟁 직전에 월북했다. 전쟁이 끝난 뒤 북한에서 제주도 해녀 출신의 젊은 여성을 만나 또 아들을 8명이나 낳았다.남로당 출신이라 황해도 농촌으로 쫓겨나 박해를 받으며 힘들게 살았지만, 남과 북에 딸은 단 1명도 없이 아들만 15명을 남겼다.…
양강도의 3월은 6시 반이면 어두워진다.강진 씨는 산에서 내려와 압록강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도로를 가로 건넜다. 이 구간은 강바닥에서부터 약 10m 높이의 석축을 쌓고 만들었기 때문에 평소에 탈북이 불가능한 곳이다. 그래서 국경경비대도 순찰만 할 뿐 고정 잠복초소를 두고 있지 않다.…
아버지는 정전으로 깜깜해진 함흥역에서 클래식 기타의 선율에 혼을 빼앗겼다. 마침 북한군 협주단이 지방공연을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연착된 기차를 기다리다 무료해지자 한 여성단원이 기타를 꺼내든 것이다. 가느다란 기타줄 6개의 떨림이 악다구니로 가득 찼던 역사를 조용하게 만…
1995년 초겨울. 북한 강원도 금강군과 김화군 사이에 있는 우두산(948m) 정상의 진지에서 북한군 병사들이 남쪽에서 날아온 삐라 한 장을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삐라에는 ‘대한민국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 자동차 등록대수 1000만 대 이상. 4명 중 1명이 자…
#요리 훈련병 “이제부터 동무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배려로 조선인민군의 식사를 책임지는 요리사로 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일장연설을 하는 소좌 앞에 트럭에서 내린 10대 후반 청소년들은 차렷 자세로 바짝 긴장한 채로 서있었다. 입소식이 끝나고 군복으로 갈아입은 뒤부…
임철(33)은 떨리는 심장을 부둥켜안고 컴퓨터 앞에 마주 앉았다. 11살 때인 1998년 겨울 두만강을 넘어 탈북한 이후 이렇게 떨렸던 적이 언제 있었나 싶었다. 숨을 깊게 내쉬고 법무부 제11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명단을 확인하기 위해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런데 서버가 다운돼 접…
# 정해진 운명북한에서 그의 삶은 태어나기 전, 그러니까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꼬였다. 아니, 이미 결정된 것이었다. 한반도의 가장 북쪽인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1974년 태어난 조광호 씨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비상한 소질을 보였다. 5살 때부터 아코디언과 바이올린 연주를 …
2002년 2월 20일 동아일보 기사.도라산역 인근서 북한군 1명 귀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비무장지대(DMZ) 인근 경의선 도라산역을 방문하기 불과 10여 시간 전인 19일 밤 소총 등으로 무장한 북한군 병사 1명이 서부전선으로 귀순, 군 당국이 귀순 경위를 조사 중이다. …
북한군 군용트럭 한대가 칠흑 같은 새벽 어둠을 뚫고 두만강을 향해 미친 듯이 내달렸다. 강가에 도착한 트럭 운전석에서 완전 군장을 한 하사가 뛰어내렸다.탄창에 30발이 든 AK47 자동소총을 메고, 탄창 3개를 허리에 둘렀다. 어깨에 멘 배낭 안에는 장전한 군용권총 6정과 탄창이 들어…
1982년 한반도 북단의 함경북도 은덕군에서 한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은덕은 악명 높은 아오지탄광이 있는 곳이다. 북한은 1977년 “김일성의 은덕으로 나날이 변모해가는 고장”이란 뜻으로 아오지의 원지명인 경흥을 은덕으로 바꾸었다가, 창피함을 알았는지 2005년에 경흥군으로 환원시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