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오랜 역사와 훌륭한 문화유산을 간직한 나라다. 그러나 한
내가 태어난 인도 콜카타 출신의 시인 타고르는 한국을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말했다. 그러나 만약 타고르
북아일랜드 출신인 나는 지난해 말 한국 지사로 전근을 준비하면서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불안감의 이유는 나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서울의 운전 매너 참 나쁘죠? 신호가 노란색으로 바뀌어도 2대 정도는 꼬리를 물고 진입하
외국인에게 ‘한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는 ‘과격한 시위대’인 듯하다. 종종 고향을 방문하면 친지들
‘추산(秋山)이 석양을 띠고 강심(江心)에 잠겼는데/일간죽(一竿竹) 둘러메고 소정(小艇)에 앉았으니/천공(天公)이 한가
필자는 홍콩, 중국, 태국 등 아시아 지역에서 14년 넘게 살며 일해 왔다. 운 좋게도 여러 곳을 여행하며 매우 다른 문
현대 한국 화교의 효시는 1882년 임오군란 때 청나라 군대를 따라 들어온 40여명의 상인들이다. 인천 선린동 일대에
“일본 사람은 하는 말과 속마음이 다르다면서요?” 한국 사람에게서 이런 말을 많이 듣는다. 그 한 예로 일본 사람
내가 태어난 독일에서는 독서가 취미인 사람이 무척 많다. 여행을 갈 때도 소설책을 한두 권씩 챙겨가는 것이 습관처럼
12년 전부터 한국을 20여 차례 오갔지만 그때마다 나는 늘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으로 의심받거나 불법노
나는 인생의 절반을 한국에서 살았고, 21번의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서울에서 맞이했다. 이제 또 한번의 새해
매년 이맘때면 필자가 일본에서 치렀던 대학 입시가 생각난다. 필자가 입시를 본 1992년은 일본 역사상 최고의 대
연말과 함께 겨울 휴가 시즌이 다가왔다. 1997년부터 한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필자는 다른 캐나다 친구와 함께
처음 한국 부임이 결정되었을 때 주위에서는 “한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려면 음주는 필수이고 ‘원샷’이 강요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