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살의 나이에 만난 한국 여인과의 사랑, 그리고 결혼은 한국에서 벌써 만 8년의 세월을 살게 했다. 이곳에서의
필자는 평소 동양철학이나 문화에 관심이 많은 편이어서 다른 외국인보다 한국에 대해 조금은 더 잘 안다고 생각해
지난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02국제가전제품쇼(International·Consumer Electric Show)에 참가하고 돌
11월 7일 한국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것을 보고 그 다음 날 신문에서 수능시험 전 과목 문제들을 봤다.
터키인들은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생각한다. 터키는 유럽권이지만 터키어는 한국어와 같은 알타이어족으로
댈러스에서의 삶은 흠잡을 데 없이 행복했다. 가족과 친구도 있었고 하루 일과도 편안했다. 그러던 중 남편이 서울
외국(한국)에서 살며 일한다는 것은 모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흥미진진한 일의 연속이다. 예의범절
처음 서울에 왔을 때만 해도 한국은 외국인들이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나라였다. 지금도 그런 이유 때문에 한국
무더위가 차츰 가시며 가을의 길목에 바짝 다가섰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 아름답고 쾌적한 한국의 가을은 나에게 절
“오늘은 반드시 구멍이 뚫리지 않은 양말을 신어야 해요.” 복날 아침 출근을 준비하다 보면 반드시 아내에게 해
한국에 온 지 2년이 조금 넘었다. 나와 내 가족은 남아프리카 이외의 곳에서 생활하는 것이 처음이어서 많은 어려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한국을 처음 방문할 때 한국이 미국과 거의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어로 조금만
한국에 온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 두 배의 시간을 한국에서 지낸 셈이다. 때문에
한국에 거의 20년을 살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아직도 전혀 바뀔 기미조차 없어 보이는 것이 하나 있
5년여 전 한국에 온 나는 평범한 한국인들의 눈에 좀 이상한 사람이었다. 저명한 독일 재단의 한국사무소 대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