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내가 사는 블라디보스토크의 크레모보 정착촌 부근을 지나다가 옆집의 고려인 부부를 만났다. 수년 전 우즈
지난해 11월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한국에 왔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고려
조금 과장해 중국인들은 먹기 위해 산다고 하는 얘기가 있다. 그만큼 중국인들에게 식생활 문화는 중요하다. 세계 모든
“사장님, 밥 많이 먹어라.” 몇 년 전 한 한국 사업가가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로 출장 와서 한 아파트에 묵었
“내가 영어만 잘하면 저 사람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불만을
얼마 전, 이곳 독일의 직장에서 한동안 내 밑에서 인턴으로 일한 한 독일 젊은이에게서 다른 회사에 입사하기 위
2003년 2월 대구지하철 화재 당시 한 일본 대학생에게서 e메일을 받았다. 피해자를 도울 방법이 없겠느냐며 안타까
1991년 처음 이란에 부임했을 때 테헤란의 한 슈퍼마켓에서 재미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몇몇 여성이 당황한 표
전체 국민의 40% 정도가 빈곤층이지만 도심 곳곳에 최고급 쇼핑센터가 즐비한 나라. 1960년대까지 일본을 제외하면 아
한국에서 직장은 공적(公的)으로는 물론이고 사적(私的)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
많은 중국인들이 고 이관숙 목사를 알고 있다. 지난해 타계한 이 목사는 1987년부터 16년 동안 중국 각지를 돌며 손발
중동에서 6년 넘게 근무하면서 만나게 되는 현지인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한국말 몇 마디를 들려준다. 가장 많이
지난해 동아일보의 ‘지한파(知韓派) 네트워크’ 시리즈를 호주에서 관심 있게 읽었다. 미국 등 서방 강국 및 동북아 지
카자흐스탄을 처음 방문하는 한국 기업인들에게 “식당에서 말없이 식사를 하고 있으면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여
필자가 이곳 캘거리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한국인은 거의 없었다. 지금도 캘거리에는 한국 교민이 8000여명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