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깨우는 어둠이 쫓겨 가는 소리/아가의 초롱한 눈으로 세상 보는 소리/빨간 장미꽃잎 마지막 인사로 낙하하는 소리/가을비는 그렇게 모두를 흔들고/바닥에서 그리움이 튀어오르는 소릴 듣게 한다.” (황길엽·“소리, 경이로운 것에 대하여”) 주말엔 전국에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온다…
휴대용 전기 손난로를 선물로 받았다. “여자는 손발이 따뜻해야 한다”며 아버지가 주셨다. 흔들 필요 없이 금세 열이 나는 데다 손아귀에 쏙 들어가 좋다. 최근 은퇴한 아버지는 가족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느셨다. 소소한 일로도 문자메시지를 보내시곤 한다. 요즘 같은 날씨에 손 안 가득 퍼…
‘출발선이 어딘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쨌거나 어딘가에서는 출발해야 한다. 원하는 만큼 빠르게 전진하지 못했을지도 모르나 그래도 나는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폴 오스터, 빵 굽는 타자기) 가슴이 뛰고 입술이 마를 때는 숨을 꾹 참고 심호흡 한 번. 출발선은 달라도 여러분 모두 오늘 아침…
입동(立冬). 겨울의 문턱. “쏴아!” 찬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나뭇잎 소낙비’. 여기저기 발길에 나뒹구는 낙엽들. 노란 은행나무 아까시나무 자작나무 잎. 붉디붉은 붉나무 단풍나무 화살나무 옻나무 복자기나무 잎. 수수한 갈색의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잎. 밟으면 무릎…
매주 이날이면 몸도 마음도 피곤하다. 포털 사이트에서 ‘사직서’가 가장 많이 검색되는 요일도 이날이란다. 월요병은 주말에 망가진 생체리듬이 원래대로 돌아오지 못해 생긴다. 그렇다고 주초부터 주말만 기다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있을까. ‘대문자로만 인쇄된 책은 읽기 힘들다. 일요일뿐인…
주말 내린 비에 은행잎도 함께 내렸다. 팔짱을 낀 채 가을 길을 걷는 연인의 머리 위로 우수수 노란 비가 쏟아진다. 회색빛 보도블록이 어느새 노랗게 변했다. 원래 빛깔로 돌려 놓는 환경미화원의 빗자루 소리가 왠지 아쉽다. 아직 매달려 있는 잎들은 남은 가을의 수명. 그 성장(盛粧)을 …
11월은 회색의 계절이다. 가을이라 부르기도, 겨울이라 우기기도 아리송한. 두꺼운 코트를 껴입기도, 가벼운 재킷을 걸치기도 애매한. 오후 여섯 시면 어둑해져 일찍 퇴근해도, 늦게 퇴근해도 뭔가 아쉬운 계절. 공휴일이 하루도 없어 마음잡고 일하려 해도 마지막 한 장 남은 달력을 보면 거…
‘군불’은 아궁이에 불을 때 방을 따뜻하게 덥히는 걸 뜻한다. ‘군’은 필요하지 않은 것을 의미하는 접두사. 우리 조상은 밥 짓기 위한 불 말고는 모두 ‘가욋불’이라 여겼다. 가을바람이 쌀쌀한 요즘 군불로 훈훈해진 방, 특히 발을 딛기 힘들 정도로 뜨거운 아랫목이 그리워진다. 마른 장…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가을엽서’·안도현) ‘가을 크다. 가을은 올 시간보다 가버린 시간이 크다’(‘회상’·고은) 키 크고 낯선 빌딩 무리 사이 오래전 헤어진 친구처럼 다정하게 말 걸어오는 글판. 길 잃고 헤매는 모두에게 위로를 건네는 간결한 …
시월의 마지막 밤. 음력 구월 열이레. 스산한 바람에 “와르르!” 진저리 치는 늙은 은행나무. 마당 귀퉁이 홀로 웃고 있는 노란 국화. 산기슭 말갛게 핀 연보라 쑥부쟁이 꽃. 콧속을 찌르는 마른풀 냄새. 땅거미 축축이 내린 어스름 퇴근길, 골목마다 눈길 그윽한 술꾼들의 두런거리는 소리…
높은 산에 오르면 공기의 양이 적은 탓에 기압이 낮다. 집에서는 섭씨 100도에 끓던 물이 90도에도 보글보글 공기방울을 쏘아 올린다. 기압이 낮으면 적혈구가 증가해 혈액의 산소 운반 능력을 높인다. 산에 가면 기분이 상쾌해지는 이유다. 지난 주말 절정으로 치닫는 단풍을 즐기려는 사람…
가을비 지나간 자리, 따뜻한 햇볕 받으며 거리를 수놓은 낙엽. 바람 불어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할 때마다 낙엽이 조심스레 포옹한 빗방울들이 반짝. 얼마 남지 않은 가을을 아쉬워하는 이별 파티일까, 그리운 이와의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리며 낙엽에 아로새긴 편지에 떨어진 서글픈 눈물일까.…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마세요/나는 거기 없습니다. 나는 잠들지 않습니다/나는 천의 바람, 천의 숨결로 흩날립니다/나는 눈 위에 반짝이는 다이아몬드입니다/나는 무르익은 곡식 비추는 햇빛이며/나는 부드러운 가을비입니다.”(작자미상, ‘천(千)의 바람 되어’) 봄비가 탄생을 상징한다면 가…
오후 5시가 되면 피곤함과 허기짐을 느껴 일이 손에 안 잡힌다. 저녁식사를 했어도 간식을 먹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 이 같은 증상이 계속된다면 ‘탄수화물 중독’을 의심해보자. 정제된 탄수화물 식품을 습관적으로 먹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비만과 성인병으로 이어지기 쉽다. 밥의 양…
‘밤의 가지들로부터, 느닷없이 타인들 틈에서, 격렬한 불길 속에서, 혹은 내가 홀로 돌아올 때 얼굴도 없이 있는 나를, 거기에 지키고 서 있다가 건드리곤 했다’(파블로 네루다 ‘시가 내게로 왔다’) 감정의 실타래가 풀리지 않을 때, 소슬한 밤바람에 쉽사리 잠이 들지 않을 때, 가만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