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반 웃고/당신이 반 웃고/아기 낳으면/마을을 환히 적시리라’ 서울 교보빌딩 광화문글판에 장석남 시인의 ‘그리운 시냇가’ 중 일부가 내걸렸다. ‘마을을 환히∼’ 구절 앞에 ‘돌멩이 같은 아기 낳으면/그 돌멩이 꽃처럼 피어/깊고 아득히 골짜기로 올라가리라/아무도 그곳까지 이르진 못…
잦은 봄비와 흐린 날씨로 농작물이 ‘햇빛 부족병’에 걸렸단다. 그런데 이 병, 농작물만 걸리는 건 아니다. 사람의 기분도 우울하게 만든다. 사실 날씨 때문만은 아니다. 오늘은 마음으로 귀환한 46명의 천안함 장병을 떠나보내는 영결식 날. 누군가의 남편, 아버지, 아들이었던 생때같은 그…
출근길 아파트 콘크리트 마당. 연보라색 라일락의 은근한 향기에 잠시 멈춰 선다. 초록색 플랫 슈즈의 둥근 코를 한참 들여다본다. 어느새 내가 슬며시 웃고 있다. ‘바람 불면/보고 싶은/그리운 얼굴//빗장 걸었던 꽃문 열고/밀어내는 향기가/보랏빛, 흰 빛/나비들로 흩어지네/어지러운 나의…
비가 내린다. 바람이 불어 우산 밑을 자꾸 파고들었다. 바닥에 동그라미가 요란하게 그려졌다. 하지만 천안함 희생장병 분향소 하얀 천막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후드득’ 소리도 내지 않았다. 국화 위에만 몇 방울 조용히 내려앉았다. 향 하나에 불을 붙였다. 공기가 온통 가라앉아 연기는 …
엄마와 아빠는 아이스크림을 ‘얼음과자’라고 부른다. 어느새 단맛을 알아버린 두 살배기 아가가 시도 때도 없이 “아찌(아이스크림)”를 달라고 조르기 때문. 아가 몰래 나누는 암호 대화. “얼음과자 줘서 달랠까?” “안 돼. 아까 하나 먹었어.” 낮이면 등에 땀이 배는 완연한 봄날. 잦아…
해가 지면 반딧불이는 ‘나 홀로 세상에 빛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쇠뿔에 앉은 개미는 ‘내가 쇠머리를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에베레스트 꼭대기에 오른 인간은 ‘히말라야를 정복했다’고 생각한다. 모든 착각은 자유. 파리가 황소 뿔에 앉았다고 황소를 정복한 것인가. 천지가 온통 …
서울 청계천 길섶에 하얗게 핀 조팝나무 꽃. 팝콘 튀겨 놓은 듯 주저리주저리 달려 있다. 앙증맞고 복스러운 자잘한 꽃들. 산자락 논밭두렁에 함박눈 내린 듯 다발로 피는 꽃. ‘저 심심산천 무덤가에 고봉밥/헛배만 불러오는 조팝꽃 고봉밥/고봉밥 몇 그릇’(복효근의 ‘조팝꽃’에서). 배고픈…
가면 가나 보다 무덤덤한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왜 이리 못내 아쉽기만 할까요. 한 차례 봄비 지난 자리에 참 많이도 떨어진 벚꽃잎. 그곳에 덩그러니 놓인 마음 한 자락. 무심한 듯 지나가는 4월의 봄 끝에서 괜스레 가슴이 찡해지는 건, 그때 그 벚꽃 아래서 다정히 손 잡아주던 그 사람…
눈부시게 화창해도 내가 울적하면 온통 깜깜한 날이다. 아무리 궂은 날이라 해도 자그마한 기쁨 하나 품고 있으면 비바람 몰아쳐도 끄떡없다. 좋은 날이나 슬픈 날이나 다 지나간다는 걸 알면서도 웃고 운다. 세상만사 눈에 보이지도 않는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는 걸 문득 깨달은 날. 빗방울이…
101번째 작품 ‘달빛 길어올리기’를 촬영 중인 임권택 감독이 눈 내리는 장면을 찍지 못해 애 태운다는 소식. 덕유산에서 한참 기다리다 설악산으로 촬영지를 옮겼단다. 지난주 때 아닌 눈이 오던 밤, 이 소식을 들었다. 얼마나 고마웠을까. 눈 한 송이, 비 한 방울 허투루 내리는 일이 …
봄비가 백곡(百穀)을 잘 자라게 한다는 곡우(穀雨)를 하루 앞두고 전국이 흐리고 일부 지방에서는 빗방울. 이제야 봄이 오나 싶은데 벌써 봄의 마지막 절기가 성큼. 아쉬운 마음을 봄철 음식으로 달래 보는 것은 어떨까. 봄향기 가득 담은 쑥국과 예부터 최상품으로 여겨지던 ‘곡우살이’ 조기…
건조한 봄바람. 백화난만을 부르는 전령사. 만개한 개나리와 진달래의 낙화를 막아주는 서늘한 바람. 꽃향기를 더해주는 훈풍에 여기저기 흙먼지. 골바람 속에서는 봄나물이 고개를 쳐든다. 나뭇가지에 새둥지처럼 매달린 기생식물 겨우살이를 보란 듯이. 흙에서 곧게 자란 산나물이 어찌 양지만 좇…
삼짇날. 파릇파릇 돋은 새 풀 밟으며, 꽃놀이 가는 답청일(踏靑日). 여인들 머리마다 연분홍 진달래꽃. “피리리∼” 아이들 버들피리(호드기) 소리. 강남 갔던 제비 돌아와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라고 화두를 던진다.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
웨딩 촬영이 한창인 4월의 신부 옆에는 추울까봐 손 꼭 잡아 주는 신랑이 있고, 트렌치코트를 파고드는 바람에 종종 걸음 중인 아가씨의 목에는 목도리 대용 꽃무늬 실크 스카프가 있습니다. 동물원 소풍보단 북 카페의 커피 한 잔과 어쿠스틱 기타 선율의 발라드가 더 어울릴 법한 날. 그래도…
연둣빛 어린 싹, 만개한 꽃, 물기 촉촉한 흙, 차갑지만 날 세우지 않은 공기. 멈춰 있는 건 하나도 없이 꼬물꼬물 움직이는 이 세상 모든 것. 온기 가득한 손 내미는 당신과 타박타박 걸으며 동네 한 바퀴. 느릿한 템포로 흘러가는 아침 산책길. 머리를 헝클어대는 바람 타고 들려오는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