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타계한 박종률(朴鍾律) 전 의원은 제8, 12, 13대 국회의원을 지내며 정통 야당의 길을 걸었던 정치인이다.
25일 별세한 이오덕씨는 미리 준비해둔 유언장에서 “죽음을 밖에 알리지 말고 간소하게 장례를 치러 달라”고 가
고인이 된 허창성(許昌成) 삼립식품 명예회장은 ‘제과제빵 산업의 산 증인’으로 통한다. 광복 직후 제과점 상미
22일 타계한 리처드 워커 전 주한 미국 대사는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생생하게 지켜본 증인이었다. 고인의 재임 기간
8일 오랜 와병 끝에 타계한 조아라(曺亞羅) 여사는 호남권 여성단체를 이끌면서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하는 역
장학사업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 ‘돈없는 수재’들에게 힘을 주었던 오정섭(吳貞燮) 동성회 이사장이 5월30일 별
그의 이름 앞에는 늘 ‘비운의 철강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국내 철강계의 원로로서 40여년에 걸친 그의
한국 농구의 큰 별이 졌다. 8일 밤 9시 88세를 일기로 타계한 전 송도중고교 농구코치 전규삼옹. 그는 한국 농구의 원
한국화가 청강 김영기(晴江 金永基·사진)씨가 1일 오후 9시30분 경기 용인시 자택에서 타계했다. 1911년 서울 태생
10일 별세한 ㈜동원의 이연(李然) 명예회장은 1916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 전주 신흥고를 졸업한 뒤 직장생활을
“스님이 입적하시고 나서 대중이 스님의 열반송을 물으면 어떻게 할까요.” “나는 그런 거 없고 달리 할 말이 없
“민족의 분단상황을 우리 가족처럼 확실히 느끼는 경우가 있을까요. 형님께서 금강산 육로관광을 가 보고 싶다는
12일 타계한 헌암 백욱기(憲岩 白煜基) 동국무역 명예회장은 국내 섬유산업계의 거목이다. 고인은 1965년 동국무역을
1일 향년 83세로 타계한 고태진(‘台鎭) 전 조흥은행장은 1970년대에 국내 금융계와 체육계를 주름잡던 인사였다.
16일 타계한 윤남의(尹南儀)옹은 애국지사이면서 평생을 친형인 윤봉길 의사의 추모 사업에 매달렸다. 1916년 충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