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4월 어느 날. 도심에는 봄이 한창이었지만 이층집 높이의 담장 앞에 서자 한기가 몰려왔다. 먼 산속 나무들도 앙상한 모습이었다. 몸이 떨렸다. 꼭 추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혼잣말을 했다. “내가 무사히 잘할 수 있을까.” 검문소에서 신분증을 제출하고 휴대전화를 맡겼다. 금속…
《 물 건너온 ‘신상(신상품)’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푸른빛은 이전보다 화사해졌고 폴리머(polymer) 재질은 매끈했다. 홀로그램 속에 들어간 인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모습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뒤집어 들여다보다 엄지와 검지로 비벼보기도 했다. 이내 고배율 현미…
#프롤로그 3700km. 대구와 베트남 도시 껀터 사이의 거리다. 기차와 비행기, 자동차를 갈아타며 꼬박 하루를 이동해야 한다. 이렇게 먼 길을 이은서 씨(25)가 나섰다. 원래 이름은 ‘원트이’였다. 베트남 출신. 한국인 민계원 씨(44)와 2006년 결혼하면서 한국에 왔다. 한국…
“무늬가 들어간 저 옷은 빼버려야겠어요. 전체 콘셉트와 안 맞아요.” 6월 24일 오후 2시. 그녀의 말에 모델 5명의 얼굴색이 새하얘졌다. 그들은 다른 모델들과 달리 하필이면 무늬가 들어간 그 옷을 입고 있었다. 프라다를 움직이는 수석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가 ‘뺄까?’도 아니고 …
《대낮 길거리 칼부림, 퇴근길 여성을 살해한 오원춘…. 거의 매일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는 이런 뉴스가 몹시 불편하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 저런 범죄를 당한 이들은 얼마나 끔찍한 공포와 고통에 시달렸을까….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날의 끔찍한 기억이 생생히 살아난다. 저 범죄 기사의 피…
“직장은 당분간 쉬셔야겠네요.” 8년 전인 2004년의 그 가을날에도 머릿속이 하얘졌다. 위암이란다. 감기 한번 앓아본 적 없는데 암에 걸리다니. 정기검진에서...
‘사각사각.’ 가위가 춤을 춘다. 55년 경력의 이발사 지덕용 씨(75)의 잽싼 손놀림에 노신사의 하얀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5분 남짓 됐을까. 지 씨는 가위를 내려놓고 이발도구함으로 다가갔다. 그의 손때가 묻은 63년 된 이발도구함이다. 서랍 맨 위 칸을 열자 꾹꾹 눌려 담겨 있던 …
《 택시 승객은 다짜고짜 문을 열고 내렸다. 요금도 내지 않은 채. 그러고는 뒤에 오던 택시를 다시 잡아타고 홀연히 사라졌다. 멍 하니 손님이 떠난 자리를 지켜보던 지체장애 3급 택시운전사는 혼잣말로 “괜찮아, 저런 손님만 있는 건 아니잖아”를 몇 번 말한 뒤에야 다시 핸들을 잡았다.…
《 “감독님…, 저 야구 그만두겠습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감독은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1998년 10월 13일. 7년 동안 마운드가 인생의 전부였던 한 고등학교 야구선수가 ‘평범한 고등학생’이 되는 순간이었다. 다른 목표도 없었다. 야구선수로 성공하기엔 실력이 턱없이 부족…
이들에게 학교는 친구라는 이름의 ‘적’이 득실대는 곳이다. 대통령까지 나서 ‘학교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지원군을 보내준다고 약속한 지 열 달이 돼 가지만 이들의 하루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더 기다릴 수도, 버틸 수도 없다. 이들은 힘을 합쳐 일진들에게 맞서기로 했다. ‘왕따 …
《 ○ 프롤로그―소년원 운동장에서모두가 같은 모습이었다. 빡빡 깎은 머리에 검게 그을린 피부. 군대 훈련병들이 떠올랐다. 가까이 갔다. 좀 달라…
엄마는 눈을 의심했다. 평소처럼 방에 틀어박혀 있다 나온 딸이 던지고 간 편지 한 장. 거기에는 ‘엄마, 나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어’라는 글자가 삐뚤빼뚤 적혀 있었다. “이게 부모한테 할 소리냐. 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엄마는 딸에게 소리를 질렀다. 단단히 혼을 내야겠…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것뿐이야. 울퉁불퉁한 도로에 쌓인 돌 몇 개를…
《 “우아아아아!” “꺄아악! 사랑해요∼.”5월 22일 오후 8시 반.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 있는 구글 본사 야외공연장 ‘쇼어라인 앰피시어터’. 이곳에 모인 1만여 명이 환호성을 올렸다. 원더걸스 슈퍼주니어 동방신기 등이 출연하는 케이팝(K-pop·한국대중가요) 콘서트가 구글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