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 한번 쯤 해보셨을 터. 특히 자기는 몰라도 자녀는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신 부모님들이 적지 않으실 것이다. 특히 자기 생각을 그림으로 나타내는 ‘비주얼 싱킹(Visual Thinking)’이 사고력 발달에 도움…
중앙청은 일제강점기였던 1926년 경복궁 내 근정전 앞에 연건평 1만여 평(약 3만3000㎡) 규모로 지은 5층 석조건물이다. 당시 조선총독부의 청사로 사용됐다. 광복 이후에는 미 군정청의 본부로 전용됐고 ‘캐피털 홀(capital hall)’이라 불렸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새 대입제도에 따라 처음 실시되는 제1차 대학수학능력시험이 20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50분까지 전국 658개 시험장에서 별다른 사고 없이 치러졌다. 시험을 끝낸 수험생들은 대체로 실험평가 때보다 쉬웠다는 반응을 나타냈다.”(동아일보 1993년 8월 20일자 1면) 대학수…
6·25전쟁 이후 북한과 미국이 실제로 전면전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때는 언제일까. 많은 역사학자들이 1976년 8월 18일이라고 의견을 모은다. 이날은 그 유명한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 벌어진 날이다. 이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는 한미 경비병과 노무자 5명이 남측 관측소…
‘9초58.’ 2009년 8월 17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 100m 결승전 기록이다. 아직껏 깨지지 않은 세계신기록이기도 하다. 그 주인공은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 이날 기록은 볼트가 통산 세 번째로 세운 100m 세계신기록이었다. 200m 레이스가 주력…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를 경복궁 근정전 회랑으로 옮기는 작업이 16일 오전 9시를 기해 시작됐다.”(동아일보 1972년 8월16일자 7면) 진흥왕 순수비는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이 북한산에 세운 비다. ‘순수(巡狩·임금이 나라를 두루 돌아다님)’는 진흥왕이 한강 유역…
‘“정말이냐….” 속삭이듯 물었다. 그 순간 서희는 자신을 휘감은 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 “만세! 우리나라 만세! 아아 독립 만세! 사람들아! 만세다!” 외치고 외치며, 춤을 추고, 두 팔을 번쩍번쩍 쳐들며, 눈물을 흘리…
“지구촌 곳곳에서 전쟁의 비극이 계속되면서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화해와 평화를 기원하는 한국 방문은 더욱 중요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동행한 세계 취재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2014년 8월 14일 서울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였다. 보름 전 북한…
1999년 8월 24일 ‘옷 로비’ 청문회장. 온통 흰색 차림에 짙은 화장을 한 한 남자가 들어섰다. 그는 증인 선서 때 자기 이름을 ‘앙드레 김’이라고 소개했다. 그러자 목요상 당시 국회 법사위원장(82)으로부터 “본명을 밝히라‘는 지적이 나왔다. 그는 자기 이름을 ’김봉남(金鳳男)…
어둠 속의 바다는 환상적이었다. 형형색색의 플랑크톤과 나란히 헤엄쳐 나갈 때는 은하수를 떠가는 것 같았다. 꿈같은 바다를 즐기고자 조명등도 껐다. 바다를 건너는 건 그렇게 아름다웠다. ‘13시간 16분 10초’. 1980년 8월 11일 수영선수 조오련(1952~2009)이 부산 …
우리는 언제부터 지금 쓰는 시간을 쓰게 됐을까. 1894년 갑오개혁을 떠올리셨다면 너무 멀리 가신 것. 일제강점기도 아까운 오답. 정답은‘ 1961년 8월 10일’이다. 박정희 정권은 5·16군사정변 성공 후 87일이 지난 이 날 표준시간을 30분 앞당겼다. 8월 10일 오전 0…
8월 9일은 한국 마라톤 역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날이다. 1936년 손기정 선생(1912~2002)이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도, 그로부터 56년 뒤 황영조 현 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47)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도 모두 8월 9일이었다. …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앞둔 여자핸드볼 대표팀의 훈련은 녹록치 않았다. 1988년 서울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1990년 세계선수권에선 하위권으로 밀려난 터였다. 선수들이 처우에 불만을 갖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등 협회와 코칭스태프 간 갈등 때문이라는 둥 온갖 논란이 …
1993년 8월 7일 대전엑스포가 일반 관람객에게 문을 열었다. 개장에 앞서 그해 2월 24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독자 편지 한 토막. “요즘 TV에서 대전엑스포의 ‘도우미’ 모집광고를 보았다. ‘도우미’라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그것이 일본어인 줄 착각했다. 어감 상 그런 느낌을 받게…
‘6일 아침. 안개가 자욱이 깔린 수평선 위에 섬 하나가 빠끔히 드러났다. “육지다! 육지! 만세!” 우리는 두 주먹을 불끈 치켜 올리면서 무의식중에 고함을 쳤다. 그러나 서로 무슨 말을 했는지 알지 못했다. ’파랑새‘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마지막 피치를 올리기 시작했다. 장장 7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