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부끄러웠을까. 가게 문을 닫고 종로3가에서 택시를 타면 “삼양동 가주세요”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대신 바로 옆인 미아동으로 가 달라고 했다. 택시에서 졸다 눈을 뜨면 택시는 이미 집과는 거리가 먼 미아동에 도착해 있었다. 서울 강북구 삼양동에서 태어나 평생을…
1960년 지금의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온 김영찬 씨(57)는 한 번도 초중고교를 동네에서 다니지 못했다. 마을 안에 학교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치동은 학원은커녕 학교도, 심지어 전기도 안 들어오던 시골 동네였다. ○ ‘사대문 안’으로 유학 가던 ‘깡촌’ 김…
지난달 17일 서울 성동구 마장축산물시장. 33m² 남짓한 작업장에서 위생복과 위생모, 위생화로 무장한 김성찬 씨(57)의 손길은 분주했다. 경기 포천 도축장에서 가져온 돼지 10마리분 족발. 20∼30kg 되는 고깃덩이를 쉴 새 없이 옮겨 털을 제거하고 세균이 번식하기 쉬운 발가락 …
조경구 씨(82)는 12대째 서울 서초구 우면산 자락에 자리한 형촌마을에 살고 있다. 이곳은 풍양 조씨의 집성촌이었다. “광산 김씨, 김해 허씨도 몇몇 있지만 그래도 조씨가 서른 집쯤 됐나, 제일 많았어.” 조 씨는 82년간 한 번도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6·25전쟁이 났을 …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김선숙 씨(50·여)는 옷가지 등을 넣은 보따리를 지고 서울행 열차에 올랐다. 1988년 2월 유난히 추운 날 오전, 전남 곡성역이었다. “언니도 하는데 나도 할 수 있다”며 옆에 앉아 걱정스레 쳐다보는 어머니를 내내 다독였다. 반나절을 달려 서울역에 내렸다.…
이사 온 지 석 달도 안 돼 물난리를 겪었다. 광복 이듬해 8세이던 진기홍 씨(80)는 서울 종로구에서 중구 신당동(당시 성동구)으로 왔다. “사실 집이라고 할 수도 없긴 했어.” 아버지가 천변에 판자로 올린 집이었다. 남산에서 청계천으로 흐르는 하천을 따라 비슷한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오정옥 씨(61·여)는 1957년 3월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서 4남매 중 맏딸로 태어났다. 평안남도 진남포항에 살다가 6·25전쟁 중 월남한 아버지가 손수 지은 집에서였다. 북에서 목수로 일한 아버지는 수수깡과 각종 판자때기를 세우고 흙을 발라 집을 지었다. 이후 10년 전 돌아가실 …
33년 전 황영숙 씨(56·여) 신혼집 앞으로 최루탄과 돌이 날아다녔다. 학교 입구를 막은 전경들과 마주한 대학생들은 인도에서 떼어내 부순 보도블록 조각을 쥐고 있었다. 구청에서 보도블록을 걷고 시멘트를 깔았지만 매운 가루가 공기에 가득했다. 갓난 아들이 최루탄 소리에 깰까 봐 함께 …
빈대떡집은 크지 않았다. 서울 중구 명동성당을 오르는 길목에 자리한 작은 가게였다. 충남 부여에서 갓 상경한 김장환 씨(89)의 서울 나날은 그곳에서 시작됐다. 1968년, 서른여덟 살이었다. 메뉴는 빈대떡과 막걸리. 단골손님이 늘어갔다. 주변 소개로 동향의 아내를 만났다. 부여에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