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의 첫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나왔을 때 무기수가 감옥에서 그런 맑은 생각을 끌어낼 수 있다는 데 놀랐다. 소주 ‘처음처럼’이 나왔을 때는 정겨운 글씨체가 신영복의 것이라는 데 대해 다시 놀랐다. 그의 ‘강의’나 ‘담론’을 읽으면서는 동양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신선한 …
1단 부음기사에 실린 이름은 낯설어도 사진 속 얼굴이 친근하다. 지난주 69세 나이로 별세한 영국 배우 앨런 리크먼.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서 아내 몰래 애인에게 줄 목걸이를 고른 뒤 ‘미스터 빈’과 선물 포장을 놓고 실랑이를 벌인 남편이다. ‘해리 포터’에서는 음울한 스네이프 교수…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중민(中民)론을 주장한다. 운동권의 민중론으로는 한국의 민주화를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 중산층과 민중을 결합한 중민이란 말을 만들었다고 한다. 한국의 민주화는 근대화의 실패로 인해 빈곤과 소외가 가중된 무산층(민중)이 이끈 것이 아니라 근대화의 성공으로 형…
1964년부터 3년 5개월간 경제부총리로 재임한 장기영은 별명이 많았다. 컴퓨터 달린 불도저, 왕초, 보스, 탱크, 불면불휴(不眠不休) 같은 말들이 그를 따라다녔다. 때로 독선적이란 비판도 받았지만 추진력과 정교함을 갖춘 리더십은 박정희 대통령을 보좌해 금리 현실화, 독일 차관 유치,…
2008년 스승의 날을 앞두고 당시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비롯한 차관과 간부들이 각기 모교를 찾아가 2000만∼500만 원씩 격려금 지급을 약속했다. 한데 이런 ‘선행’이 공개된 직후 여론이 부글부글 끓었다. 김 장관을 포함한 10명이 약속했다 취소한 격려금 7500만 원이 개…
일본에서 ‘와시모족’은 정년퇴직 후 부인이 외출할 때마다 눈치 없이 “나도 갈래” 하고 따라나서는 남편을 일컫는 말이다. 남편을 아내가 앓는 온갖 병의 근원으로 지목해 ‘부원병(夫源病)’이란 신조어도 있다. 우리나라 주부들은 은퇴 후 집에서 하루 세 끼를 챙겨 먹는 남편을 ‘삼식이’라…
바야흐로 선거철. 이틀에 한 번꼴로 전화가 걸려온다. “안녕하십니까. 4월 실시되는 20대 총선과 관련해….” 기계음이라면 고민할 필요 없다. 가차 없이 끊는다. 사람 목소리면 인내가 필요하다. 전화 면접원이 여론조사 개요를 설명한 뒤 “3분(또는 5분) 정도 시간을 내달라”고 요청하…
‘감자’와 ‘배따라기’를 쓴 소설가 김동인은 “한 모금의 연초가 막힌 생각을 트게 한다”며 흡연 예찬론을 펼쳤다. 니코틴은 뇌혈관을 자극해 사고를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 작가들이 창작의 동반자로 담배를 피운다면 서민은 고단한 인생살이에서 불쑥불쑥 솟아나는 불안감이나 압박감을 달래려고 …
“사려 깊지 못한 처신이었다.” “송구하게 생각한다.” 그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도돌이표처럼 반복했던 말이다. 자신의 교육철학을 펼치기보다 부동산 투기 의혹과 자녀의 국적 논란에 대한 질문 세례를 받고 사과하느라 바빴다. ▷이날 청문회는 …
3년 전 세종특별자치시는 ‘뭉치면 편하고, 흩어지면 고달픈 동네’였다. 주민의 8할이던 공무원과 기자들은 오전 7시 반 통근버스를 떼 지어 타고 안개 속 출근을 했다. 점심이면 다 같이 승합차로 백숙집에 갔고, 저녁이면 동네 하나뿐인 치킨집에서 번호표를 받았다. 교실이 부족해 초등학생…
쌀쌀한 겨울날 어린 꼬마가 벤치에 앉아 흐느끼고 있다. 지나가던 신사가 이상하게 여기고 왜 우느냐고 묻는다. “문과예요.”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다는 듯 신사는 소년을 껴안아준다. 진학과 취업이 어려운 문과생의 비애를 보여준 이 패러디가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았다. “인문계의 90%가…
전봇대가 골목골목 늘어서 있던 시절, 서울의 많은 전봇대에 붙어있던 광고지가 있었다. ‘임질 매독 임성기 약국(전화번호).’ 중앙대 약대 출신인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은 27세 때인 1967년 서울 종로5가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약국을 열었다. 당시로는 드물게 성병 치료약을 취급해 대박…
1970년대 이상무의 야구만화 ‘독고탁’은 허영만의 ‘각시탈’과 함께 초등학교 시절 내 또래를 사로잡았던 만화다. 교과서 외의 책은 별로 읽어 본 적이 없는 우리가 뜻밖에도 출판물에서 발견한 재밋거리였다. 만홧가게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많은 만화를 봤지만 두 만화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천지에 인기척이라곤 없었다. 마치 차고 푸른 비수가 등골을 살짝 긋는 것처럼 소름이 쫙 끼쳤다. … 독립문까지 뻔히 보이는 한길에도, 골목길에도, 집집마다에도 아무도 없었다. 연기가 오르는 집이 어쩌면 한 집도 없단 말인가! 형무소에 인공기라도 꽂혀 있다면 오히려 덜 무서울 것 같았…
예측이란 맞으면 신통하고 틀려도 그만이지만, 그래도 미래를 점쳐 보는 일은 재미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문기자의 분석을 토대로 세계적 관심사에 대한 예측을 연말 특집으로 싣고 있다. 이번 특집에선 영국이 유럽연합(EU)에 잔류하고, 시리아 내전에도 불구하고 바샤르 알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