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0시경 시각장애인 안마사 22명이 서울 강서경찰서 1층 로비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경찰의 불법 안마시술소 단속에 항의하며 “악덕 ‘탕치기’부터 잡아 달라”고 소리쳤다. 탕치기는 경찰 신고를 무기로...
“아저씨, 우리 아기 어디 있어요? 왜 가루만 남아있나요? 우리 아기 보여주세요….” 27일 오전 11시 45분 충북 청주시 상당구 목련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엄격한 잣대의 책임감으로 기업을 경영하겠습니다.”(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45) “국회의 출석요구에 응하는 게 국민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부득이한 사유로 불응해 죄송합니다. 관대한 처분을 바라겠습니다.”(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41) 재벌가 3세인 …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한 주민센터에서 사회복지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강모 씨(32·여·사회복지 9급)가 결혼을 석 달 앞둔 26일 오전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가족에게 “미안하다. 일이 많아 너무 힘들다”는 유서를 남긴 채 수내동 자신의 아파트 14층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15일 오후 대구 동구 용수동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김정강 할머니(69)가 높이 8m의 안전상징 조형물 앞에 백합을 헌화한 뒤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였다. 화강석에 새겨진 희생자 이름을 바라보던 그는 서럽게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은경아, 은정아∼, 이모는 아직도 이래(이렇게…
“다음, 고영욱 씨.” 14일 오전 10시 8분 서울서부지법 303호. 김종호 부장판사가 사건번호와 함께 그룹 ‘룰라’ 출신 방송인 고 씨(37)의 이름을 불렀다. 미성년자 성폭행 및 성추행 혐의로 지난달 23일 구속 기소된 그의 첫 재판이었다. 하늘색 수의를 입고 흰색 운동화를 신은…
“치매 걸린 노모와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동생을 홀로 10여 년간 돌보다 직장과 가정까지 잃었는데, 화마에 목숨까지 잃다니….” 8일 낮 광주 광산경찰서 형사계 사무실. 화재로 숨진 유모 씨(57)의 셋째동생(51)이 눈물을 훔치며 유족 조사를 받고 있었다. 셋째동생은 “모든 것을 희…
최기남 씨(72)는 차례상 앞에서 털모자를 벗더니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연신 매만졌다. ‘60여 년 만의 재회’가 가슴 설레는 듯 몇 번이고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그러고는 절을 하려 몸을 굽혔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40년간 이삿짐센터에서 일하며 혹사당한 다리는 관절염에 걸려 제…
“당신이 용서를 빌 사람은 내가 아니라 여기, 내 딸이에요.” 그제야 노트북 화면 속 여인이 고개를 숙였다. “정말 미안합니다….” 이 사과를 받기까지 3년이 넘게 걸렸다. 파견근무 중인 남편을 따라 코스타리카에 살고 있던 전모 씨(41)는 2009년 11월 3일, 일곱 살 딸 은아(…
‘기대에서 좌절, 그리고 다시 희망으로….’ 탈북청년 김모 씨(28)가 대한민국에서 느낀 감정 변화가 그랬다. 그는 북한에서 보호자 없이 구걸하며 떠돌던 ‘꽃제비’ 출신이다. 2006년 탈북 과정에서 북한 보위부에 붙잡혀 코와 눈, 머리뼈를 다쳤다. 그해 다시 탈북한 뒤 중국 라오스 …
지그시 눈을 감은 그는 상기된 표정이었다. 재판장의 선고가 끝나자 옆에서 함께 재판을 받은 부하 직원과 운전사의 손을 잡으며 인사를 나눴다.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부하 직원들과 달리 그는 홀로 구속 피고인 통로로 들어섰다. 수십 년간 수려한 화술과 사교성으로 사기와 로비의 경계를 넘나들…
“엄마, 엄마…이상하네, 이 추운 날씨에 밖에 나가시진 않으셨을 텐데….” 3일 오후 4시경 광주 동구 산수동 1층 단독주택 앞에서 주부 이모 씨(49)는 연신 ‘엄마’를 불렀다. 하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이 씨는 이날 남편과 함께 국, 김치 등을 챙겨 어머니 심모 씨(79)를 뵈러 …
“아빠가 아프면 큰아빠가 돌봐줄 수 있으니까 불편해할 거 없어.” 종교계에서...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배가 고파서 잠시 정신이 나갔어요.” “용서 못 해줍니다. 할 말 없으니까 손놓으세요.”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인근 반포지구대. 터미널의 한 편의점에서 3500원짜리 육포 2개를 훔치다 붙잡혀 온 A 씨(59·여)가 두 손을 싹싹…
동암의료재단 전 이사장 강모 씨(81)는 평생을 바쳐 키운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한독병원을 분신처럼 아꼈다. 외과 전문의인 강 씨는 1970년대 작은 의원으로 출발해 이 병원을 119억 원의 가치를 가진 대형 병원으로 키워 냈다. 적지 않은 봉사활동으로 지역 사회에서 인정을 받았고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