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지방에 갈 일이 있어 오랜만에 고속도로를 달렸다. 달리는 내내 만산의 초록이 차창 가득 펼쳐졌는데 어릴 적 민둥산을 보고 자란 나로서는 새삼스러웠다. 언제 저렇게 나무들이 많아졌으며 언제 저토록 숲이 들어섰나. 뭉텅뭉텅 나무가 잘려나가 붉은 흙이 드러난 곳도 군데군데 있었으나 …
미키 데자키는 미국에서 태어난 일본계 미국인이다. 대학원 졸업 작품으로 만든 ‘주전장(主戦場)’이란 다큐멘터리 영화가 주목을 받으며 유명해졌다. 주전장은 주된 전쟁터란 뜻이다. 이 영화는 위안부 문제에서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이 가장 격렬하게 싸운 전쟁터를 미국으로 보고, 거…
요즘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후에 관한 자료를 읽고 있다. 책이 대부분이지만 논문, 구술, 신문기사와 잡지, 공문서까지 다양하다. 역사가와 소설가가 자료를 바라보는 관점은 다소 다를 것이다. 소설가에게는 보편성 못지않게 개별성을 통한 진실 구축이 중요하다. 정보를 종합해내기 위한 결론이 …
여론조사 개선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허위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관련 여론조사는 여론조사 난맥상을 잘 보여준다. 2021년 4월부터 10월까지 약 7개월 사이 발표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관련 5개 여론조사에서 ‘찬성’ 비율이 43%부터 80%까지 무려 40%…
우리 책방에서 세금계산서를 발행할 때는 발행 전에 다음 내용을 전한다. 책방은 법인이고 법인명은 ‘더보이스’라는 것. 최인아책방이라는 상호와 다른 법인명 때문에 의아해하지 않도록 미리 알려준다. 법인 이름을 왜 보이스라고 지었을까? 영어엔 직업을 뜻하는 단어가 profession도 있…
“이 재난은 누구의 책임인가?” 중요하고 엄중한 이 질문이 지금 한국에서는 어리석고 위험한 질문이 되었다. 재난이 있을 때마다 책임을 따지기에 급급한 나머지 반드시 물어야 할 더 중요한 질문을 묻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재난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세월호라…
무언가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든 나는 되도록 ‘덕질’은 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산다. 덕질은 어떤 대상을 좋아하면서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찾아보는 행위를 말한다. 그런데 최근 판다들의 세계에 빠지고 말았다. 아마 모두가 알고 있을 모 동물원의 판다 식구들, 아이바오, 푸바오…
22대 국회에서 현재보다 많은 국회의원이 필요할까. 6일 국회 정치개혁특위(정개특위)가 5000명을 설문조사한 후 그중 500명을 대상으로, 공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발표회를 가졌다. 공개된 자료가 제한적이지만 언론 보도에 따르면 “비례성·대표성·책임성 강화” “승자 독식 선거제도 극복…
그러고 보니 나도 N잡러다. 30년 가까이 한 회사에서 일하다 퇴직한 후론 줄곧 N잡러로 산 것 같다. 책방을 운영하고 몇몇 지면에 글을 쓰고 강연을 하고 프로그램의 진행을 본다. 또 31년 만에 두 번째 책을 출간한 요즘은 저자 모드로 살고 있다. 책을 내고 저자가 되자 그동안 머리…
최근 일본 주가가 버블 붕괴 후 최고점을 연거푸 경신했다. 작년과 올해 일본 시장에 유입된 외국인 자금의 규모는 2013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2013년은 대규모 양적완화가 시작된 해다. 엔화 절하에 더하여 일본 기업의 실적 개선에 대한 기대감으로 외국인 투자가 물밀듯 밀려…
올해 서울국제도서전 준비는 이른 봄부터 시작됐다. ‘비인간’이라는 주제로 소설 청탁이 왔고 반가운 마음으로 청탁을 수락했다. 봄부터 원고를 쓰고 교정을 보고 열다섯 명의 작가들이 참여한 책을 받아들기까지 반년 정도가 흘렀다. ‘비인간’을 주제로 쓴 에세이와 소설을 모은 이 책은 도서전…
‘폴리널리스트(polinalist)’, 영어로 ‘정치’를 일컫는 ‘폴리틱스(politics)’와 ‘언론인’을 뜻하는 ‘저널리스트(journalist)’의 복합어다. 정치 참여 전직 언론인을 칭하는 말이다. 교수 출신 정치인을 칭하는 ‘폴리페서(polifessor)’와 비슷한 조합이다.…
몇 해 전 우리 책방은 팀장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연 적이 있다. 임원과 MZ세대 사이에 끼어 고민 많은 팀장들께 도움이 되고 싶어 마련한 프로그램이었다. 6회 수업으로 구성되어서 수업료가 꽤 비쌌는데도 공지가 나가고 얼마 되지 않아 마감되었다. 수업에 오신 분들께 참여 이유를 물었다.…
“증오는 마음의 독이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법정 스님에게 들은 말이라고 한다. 한 전 총리는 크리스천 아카데미 사건으로 1979년 3월에 연행되어 2년 반 동안 옥고를 치렀다.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 뒤 그는 그를 취조하고 고문했던 인사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한국문학번역원의 번역 워크숍 사업 일환으로 중국 칭다오에 다녀왔다. 산둥과학기술대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는 학생들과 교수님을 만나 작품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내 소설을, 번역이 아니라 한글로 읽은 독자들을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기대와 설렘이 있었다. 어느 면에서 보면 작가는 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