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23페이지 첫째 단락을 읽어보세요.” 고 장영희 서강대 교수(1952∼2009)가 생전 미국 소설 수업 때 학생에게 ‘주홍글씨’의 한 단락을 읽도록 했다. 아무 반응이 없어 다시 말하자 한동안 침묵이 흐른 후 서훈이가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학생들 이름과 얼굴을 모두 아는 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영화관들은 여전히 개점휴업 상태다. 하지만 ‘서학개미’(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들은 최근 40여 일간 미국 극장체인 AMC엔터테인먼트의 주식을 8400억 원 넘게 매매했다. 결제액 기준으로 상위 7위다. 구글 주식인 알파벳A를 …
피해자는 17세의 지적장애 여성이었다. 그는 아랫집에 사는 50대 남성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피해 진술도 구체적이었다. 아랫집 남성 김모 씨는 혐의를 부인했다. “피해자를 본 기억이 없다”고 했다. 경찰과 검찰, 법원은 피해자의 말을 믿었다. 1심 법원은 2017년 김 씨에게 징역 6…
회사원 서모 씨(34)는 지난해 서울 외곽에 아파트를 마련했다. 회사 동기들이 잇달아 집 사는 걸 보고 ‘더는 늦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절박감에 서둘렀다. 은행 대출은 물론 회사 대출까지 끌어다 산 아파트는 1년 사이 1억 원 넘게 올랐다. 아직도 오르는 집값을 보며 안도는 하지만 …
1993년 윤여상은 스물일곱 대학원생이었다. 탈북민 정착 과정을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었다. 전국을 돌며 탈북민들을 인터뷰했다. 탈북민들이 그에게 들려준 얘기는 예상과 달랐다. 그들은 북한에서 겪은 참혹한 인권 유린을 증언했다. 그는 탈북민들의 표정이 조금이나마 편안해지는 걸…
‘반값 아파트’의 원조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다. 그는 1992년 통일국민당 대선 후보로 나서 경부고속도로 2층 건설과 함께 반값 아파트 공급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논란을 빚었던 반값 아파트는 이제 선거철마다 등장하는 30년 묵은 단골 메뉴가 됐다.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담당하는 공무원 사이에서 최근 유행하는 노랫말 하나가 있다. “이매진 데어 이즈 노(Imagine there‘s no) 확진자 수∼.” 존 레넌의 명곡 ‘이매진’에서 따온 문장이다. 처음엔 식사자리 농담으로 여겼다. 하지만 노랫말에 담긴 …
20세기 초로 시계를 되돌려 보자. 장소는 남극이다. 일단 차디찬 빙하만 떠올려도 한여름 무더위가 잠깐이나마 가시지 않는가. 노르웨이의 탐험가 로알 아문센은 1911년 12월 남위 90도에 인류 첫발을 내디뎠다. 남극점에 꽂은 깃발 사진 한 장으로 그는 전 세계 교과서에 실리는 역사적…
올해 6월 발표된 5월 소비자물가가 9년 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2.6%)을 보이자 정부는 “일시적인 현상”이라며 인플레이션 걱정을 진화했다. 이억원 기획재정부 1차관은 당시 하반기(7∼12월)부터 기저효과가 완화되고 농축수산물과 원자재 수급 여건이 개선되면 물가가 안정 목표치…
‘역대 1위, 전 품목 플러스, 전 지역 플러스.’ 산업통상자원부가 최근 내놓은 7월 수출입 동향 보도자료는 이렇게 시작한다. 정부부처 공식 문서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기업 영업부 사무실의 현수막 구호로 어울릴 법한 흥분감 묻어난 문구가 굵은 컬러 글씨로 큼직하게 쓰여 있다. 부동…
2020 도쿄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양궁 대표팀은 대회 전 충남 안전체험관을 찾아 지진 체험 훈련을 했다. 돌발 변수를 미리 경험해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한다는 게 이유였다. 화살 한 번 더 쏘기에도 모자란 시간에 무슨 엉뚱한 훈련이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가능한 모든 상황에 대비…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이 사라진 뒤 ‘무주공산’으로 불리던 국민의힘 당내 계파 구도가 최근 요동치고 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에 이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입당하고, 홍준표 유승민 원희룡 등 기존 대선 주자들도 기지개를 켜면서 의원들의 이합집산이 빨라지고 있어서다. 친윤(친윤…
“기록적인 폭염, 전기요금 추가 감면을 요청합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난달 30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4차 유행에 폭염까지 더해져 국민 어려움이 커지고 있으니, 정부가 앞장서 전기요금을 깎아주자는 주장이…
이번 주 나온 ‘IPO 공급부담의 데크레센도’라는 시황분석 보고서(한화투자증권)가 정치권에서도 회자되고 있다. 최근 주식 투자자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는 카카오뱅크와 크래프톤 등의 기업공개(IPO) 과정에서의 우여곡절이 정치권 대표 신주(新株)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
달빛 아래 바람에 흔들리는 낙엽 사이로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보인다. 깊은 산중 골짜기에 자리 잡은 초가에서 홀로 책 읽던 선비가 문득 인기척을 느낀 듯 창밖 동자(童子)에게 고개를 돌린다. “이상하구나. 동자야 이게 무슨 소리냐?” 마당에 선 동자가 손으로 허공을 가리키며 선비에게 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