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특히 미국 남자들이 더 피곤한 건 응석을 부릴 데가 없기 때문이다. 언제나 강하고 독립적이어야 하는, 이른바
“대현아, 너 이제 하늘에 핀 꽃이 되었구나….” 눈물로 쓴 자기 시를 낭송하면서 시인 이진영씨의 목소리는 이미
10월 초순인데 모스크바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질척질척한 거리를 거닐면서도 우린 흥분에 들떠 있었다. ‘차이코프
김군의 등교 거부 선언은 부모에겐 충격이었다. 착하고 공부도 잘 하는 아이였기에 더욱 그랬다. 학교 갈 재미가 없
내가 알리를 처음 만난 건 외과 병동에서다. 낮 동안은 조용히 지내다가도 밤이면 깁스를 풀고 집으로 가겠다고 생떼를
“이번 추석엔 못 갑니다. 수해도 났다는데 맨손으로 어떻게 갑니까.” 불안 공포에 시달리던 그는 이제 심각한 우
해질녘이어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음침한 공기가 우리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수백만 명의 원혼이 서성이는
“이 선생, 걱정 마시오. 한국은 다시 일어납니다. 오히려 절호의 기회가 온 겁니다. 부실기업이 정리되고 대기업만
여름엔 동해로 가겠다는 사람들이 가장 많다. 거길 가자면 아슬아슬 대관령을 넘어야 했는데 이젠 터널이 뚫려 아주 쉽
88서울올림픽. 온 나라가 들썩거렸다. 우린 정말이지 우쭐했다. 우리 마당에서 세계인의 축제가 열리다니! 대단한 자부와
터키의 월드컵 예선전이 한국에서 열린다는 소식에 우린 흥분했습니다. 그때부터 한·터 친선협회에선 응원 준비에
여기는 정상이다. 우리는 지금 세계 정상에 우뚝 서 있다. 정말 잘 했다. 잘 싸웠다. 후회 없다. 뭘 더 바라는가,
“이 박사, 당신까지?” 터키 응원 셔츠를 입은 나를 보고 기가 차서인지 말을 잇지 못했다. “정말 못 말릴 사람들이
이제 주 5일 근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대세인 것 같다. 노사정간 원칙적인 합의도 이뤄진 것 같고 세부 사항에서 진
방군, 그 방법밖에 없었을까. 자네가 너무 아까워서 그래. 자신밖에 모르는 이 병적인 이기적 사회에서, 호연지기라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