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딱 한 번씩 만나는 귀농자가 있다. 매년 귀농운동본부의 송년회 때마다 보았으니 올해로 다섯 번은 만난 것
섬진강변 마고실이라는 아주 작은 마을에 살다가 문수골의 외딴집으로 이사를 했다. 매화꽃이 필 때까지 늘어지게 겨
하루 종일 바람이 드세게 분다. 기온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그릇 안의 물이 낮부터 얼기 시작했다. 한낮에 두꺼운 옷을
꼭 3년이 지났다.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꾼다는 생각으로 배낭 하나 메고 겨울로 접어드는 이곳 산청의 둔철산 자락
얼마 전 네팔 히말라야에 다녀왔다. 10여 년 전부터 이런저런 일로 그곳에 자주 가게 된다. 전생에 아마도 히말라야
밭으로 가다가도 밭머리에 선 감나무를 보면 걸음이 멈추어진다. 감이 어찌나 많이 열렸는지 잔가지들이 일제히 땅 쪽으
내가 천성산 내원사의 비구니 지율 스님을 찾아뵈러 간 것은 지난겨울에서 봄 사이 부산시청 앞에서 38일간이나 계
행복이란 무엇일까. 이제는 닳고 닳아 대중잡지 표지의 여배우 모습만큼이나 통속적으로 여겨지는 그 화두를 품고 나
참깨 수박 참외 콩 따위의 밭작물들은 장맛비로 이미 다 녹아 버렸다. 농부들은 논농사에 가느다란 희망을 걸고 있는
‘고향의 전원이 돌보지 않아 잡초만 무성하니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그 유명한 도연명의 귀거래사 첫 대목이
도시 생활을 접고 시골에서 살아보려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얼마 전까지 농촌에서 도시로 떠나던 흐름
장마 통에 미루다가 오랜만에 찾아 나선 북한산 형제봉의 숲은 또 다른 모습이다. 장맛비 덕분인지 싱그럽고 팽팽한
농사를 지은 지 3년쯤 된 지난해부터 우리 밭에 지렁이가 급격히 늘었다. 새끼손가락 두께에 길이 30cm는 되는 지렁
나는 어릴 때부터 하늘을 나는 새들을 무척 좋아했다. 서울 동대문 밖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그 시절만 해도 집 근
너나없이 입에 한번쯤 올렸을, 이 초여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삼보일배(三步一拜)가 끝났다. 자그마치 800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