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추석 즈음의 어느 날 저녁, 인천 부평공단의,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한 공장 주차장. 100여명의 여
나는 ‘또랑광대’다. 또랑광대는 실개천을 의미하는 ‘또랑(도랑)’과 땅처럼 넓고 하늘처럼 크다는 뜻의 ‘광
하고 싶다는 말들은 하면서도 쉽게 하지 못하는 ‘귀농’을 한 지도 7년이 지났다. 지지부진하던 내 삶을 바꾸고
밤 12시. 학원 강의를 마치고 간신히 탄 지하철 막차. 하루하루 소진하는 삶이 아닌, 다른 삶을 꿈꾸며 지하철 손
오늘날 지구 위를 굴러다니는 자동차는 6억 대에 이른다. 인구 10명당 1명은 자동차를 갖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 자
외국인 친구를 사귀는 일은 별로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 친구가 한국을 사랑하도록 하려면 무한한 정성과 인내심, 책
4년 전 일이다. 밤늦게 집에 가니 처가 투덜댄다. “어디 가서 뭘 했기에 70만원 내라는 고지서가 오느냐”는
“길이 끝나는 곳에서 우리의 여행은 시작된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가장 잘 표현한 말 같다. 지도를 만들기
“할인점에 ‘에누리 행사’라고 쓴 안내문이 있던데 공공장소에서 일본어를 써도 되는 겁니까?” “죄송합니다만
대학 시절 학교 출판물에 1980년대 민중미술에 관한 원고를 쓴 것이 인연이 됐다. 그리고 작가 인터뷰를 다니며 전시
지금까지 살아 온 여정으로나 현재 하고 있는 일로 보거나 나는 분명 ‘잡종(雜種)’이다. 대학 초년까지는 문학 이
내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모두 같은 옷을 입어야 했다. 목 끝까지 올라오는 칼라의 호크를 채우지 않거나 규
요즘 서울 청계천과 동대문시장, 황학동 시장, 그리고 김포시 검단 등으로 돌아다니는 것이 나의 주요 일과다. 올겨울에
개 밥 주고, 닭 모이 주고 뒷마당 작은 밭 새싹들도 요리조리 살피고, 좀 더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는 뒷산에 올라 하늘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 ‘넝마주이’를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40대 이전이라면 그 모습을 직접 본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