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좌익 사상에 나부끼는 젊은 사람들을 나는 미워할 수가 없다. 나는 그들을 평가하고 좋아하기조차 한다. 그
지난 세기말에는 20세기를 회고하는 많은 책이 쏟아져 나왔다. 포괄적인 것으로는 마이클 하워드와 로저 루이스의 ‘2
교수들이 뽑은 총장이 한 학기도 맞기 전에 사임해 버렸다. 승마하자마자 낙마해서 큰 낙상을 입은 총장이나, 그 불
집 없는 서민만 땅을 찾는 게 아니다. 대박을 노리는 부동산 투기꾼만 눈을 벌겋게 하고 땅덩이를 찾는 것도 아니
민주화 이후 우리는 세 정권을 맞고 있다. 그 정권은 저마다 무엇을 했는가. 어느 정권이든 그 정권만이 할 수 있고
또다시 온 나라가 ‘대통령 중독증’에 걸린 듯싶다. 자나 깨나 신문 방송마다, 여야 할 것 없이 온통 대통령 타령 일색
노후에도 오늘과 같은 상태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그렇기를 바라는 사람의 욕심은 이해할
“대통령이 굴복했다.” 정말인가? “대통령이 갖고 있는 정치적 자산은 당적과 대통령 직뿐이다.” 그게 어딘데?
정치가는 말을 못 할 것이다. 대다수 국민이 아직도 통일을 민족의 지상 과제로 여기고 있는 터에 한 표가 아쉬운
걱정도 팔자인가. 북핵이다, ‘일심회’다, 굵직굵직한 뉴스거리로 나라의 안보며 정체성 우려로 걱정이 잠잠해질 날이
늙은이가 칼럼을 쓴다는 건 노추(老醜)라는 생각이 든다. 젊은이들의 정보능력을 따라갈 수가 있나, 그들의 명석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내 기대를 ‘추월’해 버렸다. 나는 뒤에 처진 채 그가 가는 뒷모습을 바보처럼 바라보고 있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앞으로 살아갈 시간보다 이미 살아온 시간이 훨씬 길다는 것인가. 삶의 희망보다 삶의
젊은이와는 달리 늙은이는 새로 나온 것은 잘 모르지만 오래된 것이 사라지는 것은 잘 안다. 오늘날 우리는 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