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낙산 한 자락에는 낙산경로당이 있다. 5선 의원에 국회부의장까지 지낸 소강(小崗) 민관식 박사(2006년 별세)가 1972년 지역주민과 함께 지은 경로당이다. 방 한 칸에 부엌이 딸린 협소한 시설은 40년이 넘는 세월의 더께까지 얹혀져 낡고 볼품없게 변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인 유학생들이 일본에 맞서 러시아의 정보요원으로 활약한 사실이 최덕규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에 의해 최근 밝혀졌다. 동아일보가 지난달 28일 이를 1면으로 단독 보도하자, 일각에서는 고종과 대한제국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해석이 가능해졌다며 크게 반겼다. 일본의 침략에 대한제국이 그…
매년 이맘때면 열리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다. 4년 전 이 프로그램이 처음 방송됐을 때 왠지 타사 프로그램을 모방한 듯한 불편함이 있었다. ‘캐스팅’이라는 색다른 포맷을 내세웠음에도 그런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심사위원들이 알아듣기 힘들 만큼 추상적인, 그것도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축구는 11명이 한다. 축구를 모르는 사람들도 다 안다. 애초 정해진 인원 없이 경기를 하다 1850년대 후반 종주국 영국의 사립학교들이 대항전을 정례화하면서 11명으로 굳어졌다는 게 정설이다. 동네축구가 아니라면 11명이 뛰는 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 축구 정원을 8명으…
시행 전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거래제)’가 1월 1일부터 도입됐다. 같은 달 12일에는 거래시장이 문을 열었다. 그런데 여전히 말은 많다. “기업들 부담만 늘릴 게 뻔한 이런 걸 도대체 왜 하겠다는 건지….” 제도 시행 전 이랬던 업체들. “거래도 없고…
“오늘 점심에 뭘 드시나요?” 비즈니스 런치(업무상 점심) 자리를 자주 갖는 지인 10명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봤다. 한식을 먹는다는 사람은 2명뿐이었다. 파스타가 2명, 중식 3명, 일식 2명, 스테이크 1명이었다. 간이 설문이었지만 대부분의 비즈니스 런치 메뉴도 이와 크게 다르지…
4만3000 대 140만. 숫자만 놓고 보면 도저히 게임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4만3000은 전국 어린이집 원장들, 140만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 숫자다. 3일 국회에서 부결된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은 이런 일방적 수적 구조가 철저하게 무시된 결과였다.…
국회에서 공직 후보자 인사청문회나 진상 규명을 위한 회의 같은 장면을 촬영하다 보면 얼굴이 화끈거릴 때가 많다. 때론 자리를 뜨고 싶을 정도다. 사실 관계를 분명히 밝히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해 현란한 말로 본질을 흐리는 ‘말솜씨의 경연장’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낙인…
“이제 지쳐서 전세살이 못하겠어. 대출 받아서라도 집 살 거야.” 지난해 하반기부터 은행에서 대출받아 집을 사는 지인들이 부쩍 늘었다. 집값이 오르리라는 확신이 없는데 뭘 믿고 수억 원을 들여 집을 사느냐고 목소리를 높이던 이들이었지만 끝없이 올라가는 전세금 앞에서는 다들 도리가 …
지난 설 연휴 때 친척들과 미국 디즈니사의 애니메이션 ‘빅 히어로’를 봤다. 도박게임인 ‘로봇배틀’을 즐기는 말썽꾸러기 히로는 형 테디의 도움으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로봇을 개발해 악당을 무찌른다. 어찌 보면 흔하디 흔한 미국식 슈퍼히어로 만화다. 하지만 필자에게 이 애니메이…
적어도 한 가지 면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2·8전당대회 경선 과정은 새로웠다. 당 대표 후보로 나선 문재인 박지원 이인영 등 세 의원 누구도 박근혜 대통령을 ‘거대 악(惡)’으로 규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내 선거였지만 대통령이 공격의 주요 과녁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야당에서 특기할 …
“중학교 2학년 학생이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도록 써라.” 수습기자 때 몇몇 선배가 금언처럼 강조한 말이다. 문장이 전하는 취지에 공감하지만 단어 곧이곧대로 동의하진 않는다. ‘중학교 2학년생의 이해력’이라는 기준이 모호할뿐더러 쓰는 이의 개성을 억누르는 전제로 작용하기 쉽다. 아…
“명동은 중국인으로 넘쳐났다는데, 압구정동은 한산하더라.” 설 연휴 유독 중국인 관광객(遊客·유커) 효과를 보지 못한 곳이 있다. 예년 같으면 얼굴에 붕대를 감은 중국인들이 활보했을 서울 강남의 성형외과 시장이다. 국내 성형외과에서 연이어 사고가 터져 중국 내 여론이 악화됐던 …
2011년 초 일본 역세권 개발을 취재하면서 고베(神戶) 시 외곽의 신칸센 ‘신고베역’을 방문한 적이 있다. 기존 도심과 한참 떨어진 산 중턱에 세워진 역사는 적막 그 자체였다. 주변에 지어진 오피스텔엔 ‘추가 할인 분양’을 알리는 큼지막한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당시 기자를 안내했…
30년 전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에 나온 ‘석유의 미래’는 30년 정도 남았었다. 어른이 되면 석유로 가는 자동차는 모두 없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비슷한 시기 ‘걸어가면서 전화 통화를 하면 참 좋겠다’는 바람은 대학 시절 현실이 됐지만 석유로 가는 자동차는 앞으로도 수십 년은 너끈히 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