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아내와 함께 TV 드라마를 보다가 부아가 돋았다. ‘나쁜 남자’가 여주인공의 마음에 감동의 쓰나미를 일으키는 장면에서였다. “저런 남자가 오로지 한 여자를 위한 순애보를 쓴다는 게 말이 돼? 여자들은 왜 그런 환상을 품는지 모르겠네.” 그렇게 말하고는 아내를 살피다가 흠칫 놀랐…
남자가 서점에 들어서자 ‘휴가철 필독서’ 코너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최고경영자들 혹은 전문가들의 추천을 받은 책들이 탑처럼 쌓여 있었다. ‘필독서’라는 어감의 강한 압박. 그는 사람들 틈에서 필독서들을 들춰보다가 불안해졌다. 역시 몇 권을 사들고 가서 읽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
TV에 아이돌그룹의 멤버가 등장할 때마다 아들의 ‘연예인 병’이 깊어졌다. “노래든 연기든 나도 저만큼은 할 수 있어. 그러니까 연기학원 좀 보내줘.” 아내 또한 아들에게 큰 기대를 거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밀어주자. 혹시 알아? 쟤가 수백억 원짜리 ‘걸어 다니는 기업’이 될지?” …
아내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을 때 남자는 출장 중이었다. 아이가 학교에서 폭행을 당해 병원에 가는 중이라고 했다. 남자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는 휴대전화 메시지를 확인하고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밤늦게 집에 도착해 잠든 아이의 얼굴을 살펴보니…
아이를 볶던 아내를 말린 것까지는 괜찮았다. 말꼬리의 “그러게. 비싼 학교에는 왜 넣어가지고”가 화근이었다. 아내의 공세가 남편에게로 방향을 바꾸었다. 아내는 “애가 우리보다 나은 인생을 살지 말라는 뜻이냐”며 따지고 들더니, 결국 “아빠가 능력이 없어 서포트를 못하니까 아이도 좋은 …
“그 렌즈, 못 보던 건데? 새로 샀지?” 카메라를 만지던 남자는 아내의 기습에 간이 떨어질 뻔했다. “아냐. 있던 거잖아.” 태연을 가장했지만 소용없었다. ‘우겨보기’가 통하지 않자, 다음에는 ‘공돈 챙겨주기’ 수법을 써보았다. 구입한 렌즈를 보여주며 아내에게 돈을 내밀었다. “바…
남자는 아내와 큰소리로 다툰 뒤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불평을 쏟아내는 아내에게 버럭 소리를 지른 것이 싸움의 발단이었다. “나보고 뭘 어쩌라고!” 고함을 칠 일도 아니었다. 어머니와 아내의 신경전이 어디 하루 이틀이었나. 생각해 보니까, 화가 난 것은 아내 때문이 아니었다. …
벌써 세 시간째다. 발바닥에 불이 난 것 같고 허리도 아파온다. “이거 어때? 괜찮지?” 피팅룸에서 나온 아내가 한 바퀴 돌면서 남자에게 묻는다. 그는 안면근육을 조작해 감탄하는 표정을 짓는다. “잘 어울리는데! 그걸로 하자.” 솔직히, 뭐가 뭔지 모른다. 이쯤에서 적당한 타협과 구매…
“애가 학원에서 안 와. 휴대전화도 꺼져 있고.” 남자가 부랴부랴 집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문을 걸어 잠근 채 방에서 농성 중이었다. 아내가 대변인 노릇을 했다. “말하기 싫대. 혼자 있겠다는데?” 부부는 아이의 최근 행동을 분석한 결과, ‘반항기’에 접어들었음이 틀림없다고 결론을 내…
일본의 방송에는 ‘게쓰쿠(月9)’라 불리는 시청률 제조기가 있다. 후지TV에서 매주 월요일 오후 9시에 방송하는 드라마를 통칭해 ‘게쓰쿠’라고 부르는데, 역대 시청률 신기록을 게쓰쿠들이 독식하다시피 했다. 게쓰쿠의 높은 인기는 기무라 다쿠야 같은 꽃미남 연예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덕…
연휴 마지막 날, 여자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한낮이었다. 입안이 모래를 삼킨 것처럼 바싹 말랐고 눈에 뿌옇게 비친 천장이 빙빙 돌았다. 남자들은 이런 술을 뭐가 좋다고 그렇게 마셔대는 건지. 어젯밤, 남편과 식당에서 삼겹살을 구운 것까지는 좋았다. 시댁일로 말다툼이 벌어졌고, 그…
‘왕년의 아이돌’을 이따금 TV에서 본다. 성공이 할퀴고 간 상처가 깊어서 오랫동안 아팠다는 후일담을 털어놓으며 눈물짓는다. 송나라 때 학자 정이(程이)는 ‘인생의 세 가지 불행’ 중에서 어린 시절 과거에 급제하는 소년등과(少年登科)를 첫 번째로 꼽았다. 소년등과야말로 부모형제를 …
“월급봉투가 사라진 게 비극의 시작이었어. 은행에서 돈을 찾아 쓰면서 고마움을 느끼겠어? 그때부터 아버지의 권위가 무너진 거라고.” 회사 창립기념식에서 OB 선배가 열변을 토한다. 그러나 남자는 선배의 말에 공감하지 못한다. 월급봉투로 건넨다 한들 뭐가 달라지겠는가. 가족을 위한 노동…
영화 ‘건축학개론’은 대학 1학년 때 친구였던 여자가 15년 만에 남자를 찾아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건축가가 된 남자는, 의사 사모님이 된 그녀로부터 집을 지어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그녀가 남자의 첫사랑이었다는 사실이 차츰 드러난다. 고백하지 못했던.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두…
결혼을 계기로 도약하는 남자들이 있다. 싱글일 때에는 그저 그랬던 이가 결혼 이후 변모하더니 어느 순간 무대의 중심에 서는 것이다. 본인의 노력과 세(勢)에 힘입은 바가 크겠지만, 결혼을 잘한 덕분으로 평가를 받기도 한다. 결혼을 통해 극적인 변신에 성공한 대표적 인물로 온달을 꼽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