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연장선상에 ‘비움’이 있다. 빽빽한 스케줄에 느림을 적용하면 시간 중간 중간에 텅 빈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 많은 이들은 이 비움, 혹은 비워짐이 의미가 없거나 별 소용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이 비움이야말로 또 다른 채움과 충만을 위한 ‘결정적 배후의 공간…
삶의 속도를 늦추는 건 단지 긴장을 풀고 여유로움을 만끽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현재 생활에 더 강한 긴장을 불어넣고, 하고자 하는 일을 완벽에 가깝게 만드는 견고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시인’으로 추앙되는 이백(李白·701∼762)은 방랑과 자유로 …
가끔씩 삶에 대한 의혹이 생긴다. 과연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생활, 혹은 일이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일까?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 맞는 것일까? 정말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 이런 질문은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에 이미 내재돼 있다. 즉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같은 질문은 …
현대인은 끊임없이 소비를 하며 살아간다. 물건을 사는 운명에 처한 우리는 ‘소비자’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아직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몇몇 원시부족을 제외하고는 이 소비자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특정 물건의 소비자일 뿐 아니라 스스로가 …
‘오리진(origin)’의 붕괴는 인간관계에서도 필요하다. 관계의 오리진은 ‘나’와 ‘너’의 엄정한 분리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시작된 개인의 발견은 이런 생각을 공고화했다. 이제 ‘나’는 하나의 소우주이며, 누구도 함부로 침해할 수 없는 사적인 존재다. 또 독립적인 인격과 자유, 권…
콤플렉스를 복권하고 마이너리티의 힘을 활용해 새로운 발전의 동력으로 삼는 건 ‘하이브리드(Hybrid)적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이브리드는 혼종(混種), 혼성(混成), 혼혈(混血)의 의미다. 서로 달라 보이던 것들을 ‘이종교배’함으로써 이제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종을 탄생시키는…
현대는 ‘서열화된 사회’라 할 수 있다. 1등과 2등이 나뉘고, 일류와 삼류가 구분되며, 메이저와 마이너로 분류된다. 이렇게 순서를 매기고 서열화하는 것은 도구적 이성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서열화에 따른 장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폐해도 만만치 않다. 대표적으로는 주변부로 밀려…
사명을 뜻하는 영어 ‘미션(Mission)’은 ‘보내다’ ‘파견하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미토(mitto)’에서 유래됐다. 따라서 사명은 ‘어디론가 보내거나 파견될 때 주어지는 일’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를 인생 전체로 확대해 보면 사명이란 우리의 삶이 존재하는 가운데 추구해야 할…
‘사명에 투자하라’는 말이 자칫 개인의 이익은 희생한 채, 타인 혹은 공공의 미래만을 꿈꾸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사람들은 사명을 추구하는 이에게 ‘제 앞가림도 못한다’는 식으로 타박한다. 당장 자신의 앞길도 관리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타인의 앞길을 개척할 수 있겠느냐는 것.…
이익은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동력이다. 이익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모이고, 그 사람들 사이에서 관계가 형성된다. 따라서 이익이란 복잡한 세상을 명쾌하게 정리하고 확실하게 구분하는 잣대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그걸 하면 이익이 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곧 자신의 행동을 결정할 …
현대인의 세계관을 지배하는 것 중 하나가 인과성이다. 결과가 있으면 원인이 있어야 하고, 원인이 있다면 반드시 그에 따른 결과도 있다는 논리는 영원불변의 진리처럼 생각된다. 하지만 물리학이 아닌 인간학의 관점으로 들어오면 이런 인과성이 훼손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놀라운 업적을 이루는…
광기는 모두가 상식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한 회의와 의심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비상식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을 염탐하고, 넘겨짚고, 상상해봄으로써 낡은 사고를 전복할 수 있다. 즉, 광기는 사고의 프레임을 뒤바꿀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이제껏 억눌려왔던 광…
광기는 이성의 시대가 요구하는 근거와 증명이 완전히 배제된 상태를 말한다. 이는 애매모호함을 넘어 ‘착란’이라 부를 수 있는 상태까지 도달하게 된다. 따라서 광기는 질병으로 분류돼 치료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에서 광기는 주어진 국면의 마지막 틀을 깨고 다음 국면으로 나가게…
‘애매모호함’이 가지는 중요한 특징은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경계가 애매하고 색깔이 분명하지 않아 유심히 관찰해도 이것이 저것인지, 저것이 이것인지를 잘 모른다는 뜻. 애매모호함의 이러한 특징은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에서 잘 나타난다. “어느 날 장주(莊周)는 꿈을 꾸었다. …
‘근거와 증명’이라는 고정된 틀을 깨고 창의성으로 가는 길을 열어준 ‘애매모호함’은 이른바 ‘이중사고(Double Think)’라는 것에 의해 강화될 수 있다. 이성과 합리는 기본적으로 ‘정합성(整合性)’을 추구한다. 부정과 긍정이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단일화된 진실을 원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