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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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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91>신경의 통로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91>신경의 통로

    신경의 통로 ―채호기(1957∼) 산에 있다. 검은 나무둥치와 검은 가지, 녹색의 잎들 사이로 신경이 엿보이는. 그 신경을 바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바람이 불고, 잎이 손바닥을 뒤집고 나무의 머리칼인 푸른 살덩이가 송두리째 휘어지고 뒤집히며 얼굴 뒤의 가면을 보여준다. 비가 내린…

    • 2014-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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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90>그가 복숭아를 보내왔다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90>그가 복숭아를 보내왔다

    그가 복숭아를 보내왔다 ―박정남 (1951∼) 상자를 여니 복숭아 내음이 진동했다 상자 안에 꽁꽁 묶여 있던 단 내음이 ‘좋아라’ 하고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도실도실(桃實桃實) 토실토실 분홍 볼 복숭아들이 즐겁게 뛰쳐나왔다 피서 대신 그가 농사짓는 복숭아밭에 갔다 매미가 쨍쨍 우…

    • 2014-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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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89>물 끝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89>물 끝

    짧은 장마가 지났다. 햇빛에 환호작약하는 듯 매미울음 소리 자지러진다. 목이 바짝 마르다. 집에 넘쳐나던 생수가 다 떨어졌다. 이 염천에 무겁기 짝이 없는 생수를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 5층으로 배달시키는 건 못할 짓이라 자제한 결과다. 수돗물이라도 마셔야겠다. 페트병에 든 ‘아리수’는…

    • 2014-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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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88>끝말 잊기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88>끝말 잊기

    끝말 잊기 ―김성규(1977∼ ) 물고기가 처음 수면 위로 튀어오른 여름 여름 옥수수밭으로 쏟아지는 빗방울 빗방울을 맞으며 김을 매는 어머니 어머니를 태우고 밤길을 달리는 버스 버스에서 졸고 있는 어린 손잡이 손잡이에 매달려 간신히 흔들리는 누나의 노래 노래가 소용돌이치며 흘러다니…

    • 2014-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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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87>커다란 나무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87>커다란 나무

    커다란 나무 ―김기택(1957∼ ) 나뭇가지들이 갈라진다 몸통에서 올라오는 살을 찢으며 갈라진다 갈라진 자리에서 구불구불 기어 나오며 갈라진다 이글이글 불꽃 모양으로 휘어지며 갈라진다 나무 위에 자라는 또 다른 나무처럼 갈라진다 팔다리처럼 손가락 발가락처럼 태어나기이전부터이미갈라져…

    • 2014-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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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86>령(零)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86>령(零)

    령(零) ―이현호(1983∼ ) 시간들이 네 얼굴을 하고 눈앞을 스치는 뜬눈의 밤 매우 아름다운 한자를 보았다 영원이란 말을 헤아리려 옥편을 뒤적대다가 조용히 오는 비 령(零) 마침 너는 내 맘에 조용히 내리고 있었으므로 령, 령, 나의 零 나는 네 이름을 안았다 앓았다 비에…

    • 2014-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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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285>고쳐 쓰는 지난해 마리엥바드에서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285>고쳐 쓰는 지난해 마리엥바드에서

    이 시를 읽자니 갑자기 당기는 음악이 있다. 음반은 찾았는데 콘센트에 전축 플러그를 꽂을 자리가 없다. 갈등하다 선풍기를 포기한다. 이제 되었다. 도입부의 철썩이는 파도소리와 함께 소금기 가득한 따가운 햇볕이 살갗에 달라붙는 듯. 달콤하고 뜨겁고 나른한, 장프랑수아 모리스의 ‘모나코’…

    • 2014-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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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84>만월(滿月)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84>만월(滿月)

    만월(滿月) ―김정수(1963∼ ) 막내네 거실에서 고스톱을 친다 버린 패처럼 인연을 끊은 큰형네와 무소식이 희소식인 넷째 대신 조커 두 장을 넣고 삼형제가 고스톱을 친다 노인요양병원에서 하루 외박을 나온 노모가 술안주 연어 샐러드를 연신 드신다 주무실 시간이 진작 지났다 부족한 …

    • 2014-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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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83>낮달 또는 수월관음도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83>낮달 또는 수월관음도

    낮달 또는 수월관음도 ―윤금초(1942∼ ) #1. 옥판선지 속 빛 같은 문기(文氣) 어린 공중 거기 해거름 낮달 한 채 양각으로 돋아 있다. 허공은 무젖은 화첩, 숨결소리 들려온다. #2. 이따금 비늘구름 미점산수(米點山水) 그려놓고 풋잠 깜박 들었다가 한껏 부푼 구름 일가(一家…

    • 2014-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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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82>접촉 사고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82>접촉 사고

    접촉 사고 ―강연호(1962∼ ) 출근길 접촉 사고가 났다 충돌도 아니고 추돌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접촉이라는 사고 접촉이라는 말이 에로틱해서 나는 잠시 웃었다 사고라는 말뜻까지 다시 들려서 또 웃었다 길에서 만난 개미 두 마리 머뭇머뭇 더듬이로 서로의 몸을 더듬다가 아예 한 몸으…

    • 2014-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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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81>연희―하다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81>연희―하다

    연희―하다 ―안현미(1972∼ ) 장원에는 고양이와 꿩이 살고 자정이오면스무개의창문은 목련처럼피어오른다 나는 장원의 심부름꾼 고양이, 꿩, 창문, 목련의 꿈을 작물처럼 가꾸는 자 손님들은 계절마다 얼굴을 바꾸고 나는 계절마다 버려진 얼굴을 뒤집어쓰고 나는 유희하는 자 나는 연…

    • 2014-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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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80>우편 4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80>우편 4

    우편 4 ―장이지(1976∼ ) 내 간지러운 사춘기의 후미진 길목에는 지천으로 번진 채송화의 요염한 붉은빛 따라 남몰래 같은 학교 남학생을 쫓아다니던 축축한 꿈도 있지요만 그 기분 나쁜 미행의 꼬리를 나무라지 않은 안경잡이의 그 넉넉한 마음과도 아쉽게 갈라서버리고 실은 안경잡이의…

    • 2014-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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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79>망치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79>망치

    망치 ―유병록(1982∼ ) 여기 망치가 있다 쇠를 두드려 장미꽃을, 얼음을 두들겨 태양을, 무덤을 내리쳐 도시를 만든 망치는 무엇이든 만들어내지만 함부로 뭉개진 얼굴 눈이 감기고 귀가 잘리고 입이 틀어 막힌 둔기의 윤리 괜찮소 누구나 귀머거리가 되니까 누구든 벙어리 가 되니까…

    • 2014-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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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78>고구마, 고구마들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78>고구마, 고구마들

    고구마, 고구마들 ―이경림(1947∼) 자, 이 고구마를 먹어치우자 불그죽죽한 껍질을 벗기고 노오란 속살을 먹어치우자 속살같이 들큰한 시간을 먹어치우고 허벅한 뒷맛도 먹어치우자 뽀오얀 접시 위에 놓인, 아니 넓적한 탁자 위에 놓인, 아니 더러운 마룻장 위에 놓인, 아니 컴컴한 …

    • 2014-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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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77>첫새벽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77>첫새벽

    첫새벽 ―한강(1970∼ ) 첫새벽에 바친다 내 정갈한 절망을, 방금 입술 연 읊조림을 감은 머리칼 정수리까지 얼음 번지는 영하의 바람, 바람에 바친다 내 맑게 씻은 귀와 코와 혀를 어둠들 술렁이며 포도(鋪道)를 덮친다 한 번도 이 도시를 떠나지 못한 텃새들 여태 제 가슴털에 …

    • 2014-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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