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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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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86>아름다운 저녁이었다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86>아름다운 저녁이었다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박주택(1959∼) 아무것도 들어갈 수 없었다 작은 저녁이었다 우유를 먹은 배가 슬슬 부글거릴 때쯤 부딪쳐서 돌아올 것이 없는 초원이었다 오지 않을 것 같은 날짜는 돌아온다 벌레들이 풀과 풀 사이를 건너뛰고 개 짖는 소리는 어디에서나 같다는 사실 (듣기를 달리…

    • 2013-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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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185>비밀정원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185>비밀정원

    비밀정원 ―정용주(1962∼) 다래 덩굴처럼 산속으로 이어진 오솔길 죽어 쓰러진 나무들 스스로 껍질을 벗겨내고 있다 엉킨 덩굴에 매달려 쪼그라든 몇 개 산열매처럼 지워져가는 길의 가지 끝에서 돌무더기 쌓아놓은 흔적만 남아 있는 화전민들의 옛 집터 증거해야 할 아무 자랑도 없이 부서…

    • 2013-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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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84>난 몰상식한 시가 좋다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84>난 몰상식한 시가 좋다

    난 몰상식한 시가 좋다 ―이승훈(1942∼) 20년이 넘는다. 똑같은 방에서 똑같은방을 보며 똑같은 방과 함께 웃으며 담배 피우며 똑같은 책상 똑같은 의자 아아 얼마만이야? 벽에 걸린 거울도 똑같고 거울 보는 나도 똑같고 20년 20년 아니 백 년이다. 스탠드 재떨이도 똑같지. 이…

    • 201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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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83>정릉 산보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83>정릉 산보

    정릉 산보 ―최동호(1948∼) 새벽 언덕길, 사지가 굳어 거동이 불편한 아들에게 아침체조를 가 르치는 젊은 어머니가 있다 좁은 산길, 중학생 영어를 암기하다 얼른 등 뒤에 책을 감추고 내려오는 중년여성이 있다 봄 언덕길, 꽃아 예쁘다 새야 반갑다 손뼉 쳐 햇빛 가르며 올라 가는…

    • 2013-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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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82>주님의 기도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82>주님의 기도

    주님의 기도 ―니카노르 파라(1914∼) 온갖 문제를 짊어지신 채 세속의 보통사람처럼 오만상을 찌푸리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더는 저희를 생각하지 마소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괴로워하시는 걸 이해합니다. 당신께서 세우시는 것을 부수면서 악마가 당신을 괴롭힌다는 것도 압니다. …

    • 201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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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81>겨울 이야기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81>겨울 이야기

    겨울 이야기 ―김상미(1957∼) 천 년 전 겨울에도 오늘처럼 문 열고 있었다 문 밖 짧은 해거름에 주저앉아 햇빛 제대로 이겨내지 못하는 북향, 쓸쓸한 그 바람소리 듣고 있었다 어떤 누구와도 정면으로 마주보고 싶지 않을 때 문득 고개 들어 바라보는 창 나뭇잎 다 떨어진 그 소리 …

    • 2013-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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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80>오늘의 커피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80>오늘의 커피

    오늘의 커피 ―윤성택(1972∼) 갓 내린 어둠이 진해지는 경우란 추억의 온도에서뿐이다 커피향처럼 저녁놀이 번지는 건 모든 길을 이끌고 온 오후가 한때 내가 음미한 예감이었기 때문이다 식은 그늘 속으로 어느덧 생각이 쌓이고 다 지난 일이다 싶은 별이 자꾸만 쓴맛처럼 밤하늘을 맴돈…

    • 2013-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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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79>얼룩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79>얼룩

    얼룩 ―이사라(1953∼) 검버섯 피부의 시간이 당신을 지나간다 시간을 다 보낸 얼룩이 지나간다 날이 저물고 아픈 별들이 뜨고 내가 울면 세상에 한 방울 얼룩이 지겠지 우리가 울다 지치면 한 문명도 얼룩이 되고 갓 피어나는 꽃들도 얼룩이 되지 지금 나는 당신의 얼룩진 날들…

    • 2013-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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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78>늙은 소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78>늙은 소

    늙은 소 ―정래교(1681∼1759) 힘 다해 산밭 갈고 난 뒤에 나무 그루터기에서 외로이 우네. 어떻게 해야 개갈(介葛)을 만나서 네 뱃속의 말을 할 수 있을거나. 시인 정래교는 여항인(閭巷人)이다. 여항인이란 ‘조선시대에 벼슬하지 않은 일반 백성’이란다. ‘여염(閭閻)의 사람…

    • 2013-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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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77>흔들릴 때마다 한잔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77>흔들릴 때마다 한잔

    흔들릴 때마다 한잔 ―감태준(1947∼) 포장 술집에는 두 꾼이, 멀리 뒷산에는 단풍 쓴 나무들이 가을비에 흔들린다 흔들려, 흔들릴 때마다 한잔씩, 도무지 취하지 않는 막걸리에서 막걸리로, 소주에서 소주로 한 얼굴을 더 쓰고 다시 소주로, 꾼 옆에는 반쯤 죽은 주모가 살아 있는 참…

    • 2013-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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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76>뒷굽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76>뒷굽

    뒷굽 ―허형만(1945∼) 구두 뒷굽이 닳아 그믐달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수선집 주인이 뒷굽을 뜯어내며 참 오래도 신으셨네요 하는 말이 참 오래도 사시네요 하는 말로 들렸다가 참 오래도 기울어지셨네요 하는 말로 바뀌어 들렸다 수선집 주인이 좌빨이네요 할까봐 겁났고 우빨이네요 할까…

    • 2013-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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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74>옛 이야기 구절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74>옛 이야기 구절

    옛 이야기 구절 ―정지용(1902∼1950) 집 떠나가 배운 노래를 집 찾아오는 밤 논둑길에서 불렀노라. 나가서도 고달프고 돌아와서도 고달펐노라. 열네 살부터 나가서 고달펐노라. 나가서 얻어 온 이야기를 닭이 울도록, 아버지께 이르노니- 기름불은 깜박이며 듣고, 어머니는 눈에…

    • 2013-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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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73>길에 누운 화살표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73>길에 누운 화살표

    길에 누운 화살표 ―최정례(1955∼) 네 비행기 날아가고 지금쯤 구름 속에 있겠다 바다 위에 떴겠다 드디어 땅바닥에 닿았겠다 그러나 생각 않기로 한다 대신 네 호흡인 구름에게 푸른 사과와 붉은 사과가 있다고 전한다 좌판에 푸른 사과와 붉은 사과 서로의 볼을 맞대고 있다고 내…

    • 201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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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72>물소리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72>물소리

    물소리 ―조정권(1949∼) “그럼 저녁 6시 마로니에에서 보십시다” 퇴근 후 식어가는 찻잔을 앞에 두고 두 시간 여를 기다리다가 한 시간을 더 기다려보다가 어둠 속으로 나와 전철 타러 공원을 가로질러 가는데 그 밤 어둠 속 마로니에 나무 밑에. 아! 이성선 시인이었다. “조형이 마…

    • 201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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