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켈러의 책 ‘사흘만 볼 수 있다면’처럼 나도 사흘만 들을 수 있다면, 장사익 선생님의 노래를 꼭 듣고 싶어요.” 친한 분을 통하여 테레사라는 세례명을 가진 청각장애인의 편지를 접하게 되었다. 10여 년 전에 그녀는 친구 손에 이끌려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장사익 콘서트에 갔는…
강원 횡성군의 한 농장에서 팔자 좋은 개 한 마리를 보았다. 목줄을 매놓지 않아 넓은 농장을 마음껏 뛰어다니며 무공해 식품을 먹고 살고 있으니 그야말로 상팔자였다. 그러나 이 개 ‘말리’에게도 아픈 과거가 있다. 안내견 학교에서 퇴출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 바람에 이곳까지 흘러들어오게…
병원에 가면 어쨌든 불안하다. 지난달에 갑상샘 검사 결과를 보기 위해 S병원에서 우두커니 앉아 차례를 기다리다가 이 병원에서 갑상샘암 수술을 받은 지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50대 중반인 그분은 수술 후에도 치료차 병원을 들락거리던 중에 병원 로비에서 S생명 판촉사원들을 보고 무료…
배보다 배꼽이 크다더니 요즘 부동산 사정이 딱 그런 것 같다. 일부 지역에서는 전세가가 매매가를 추월하고,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소형아파트가 대형보다 비싸게 거래됐다고도 한다. 하필이면 베이비붐 세대에 속한 나의 부동산 역사(歷史)도 기구하다. 결혼 이후 집을 네 번 샀는데 맨 처…
나의 학창 시절에 ‘대머리 총각’이라는 대중가요가 크게 유행했다. 아마 그 시절에는 스스럼없이 그 노래를 불러도 괜찮을 만큼 대머리 총각이 별로 없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당시에 진짜 대머리 총각과 결혼하여 우리를 의아하게 만든 친구가 있다. “그때 넌 어떻게 해서 대머리 총각과…
다음 일요일에 결혼식을 앞둔 신부 아버지와 점심을 함께 먹으면서 딸을 결혼시키는 아버지의 심정을 들었다. “내가 결혼식을 준비해 보니까 지금까지 남들의 결혼식을 충분히 축하해 주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렇게 정성이 들어가는 일인 줄 몰랐어요.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신경을 썼…
최근에 전기밥솥을 바꿨다. 그랬더니 이 밥솥이 참 말이 많다. 백미, 맛있는 취사를 시작하겠다, 잠금장치를 해라, 뜸을 들이겠다, 밥이 다 되었으니 밥을 저어줘라 등등 낭랑한 목소리로 야무지게 말을 건네는데 귀가 어두운 나의 친정아버지, “저게 다 무슨 소리냐?” 하신다. 그 말씀…
요즘은 결혼 시즌이 따로 없지만 그래도 10월은 결혼식이 가장 잘 어울리는 달이다. 새 출발을 하는 젊은이들이니 ‘남들처럼’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독특한 결혼 이야기를 만들면 어떨까? 나의 지인 중에 문웅 교수는 신부에게 결혼예물 대신 오지호 화백의 그림을 선물한 분이다. 같은 값이면…
젊은 귀성객들로 잠시 북적거렸을 농촌이 다시 적막에 휩싸였다. 가을 이맘때에 간호학과를 갓 졸업한 스물세 살 박도순 씨가 시골 중에 시골이라는 전북 무주구천동 보건진료소장으로 부임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녀는 자신의 나이보다 세 배는 더 많은 동네 어르신들에게 깍듯이 소장님으로 …
불과 한 주일 사이에 여름에서 가을로 확 바뀌어버렸다. 맑은 가을날 도심에만 있기가 아까워서 강원 철원에 있는 승리전망대로 향했다. 매표소에 도착하니 몇몇 사람이 출발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표에 맞추어 안내원과 함께 승리전망대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두 딸과 함…
아들 친구가 놀러 왔다. 자기들끼리 방에서 한참 쑥덕거리더니 친구가 돌아간 뒤에 아들이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그 친구가 길을 가다가 몇만 원의 현금과 신분증이 들어 있는 지갑을 주웠다는 것이다. 잠시 망설이던 친구는 주운 지갑에서 현금만 꺼내서 자기 지갑에 넣었다고 한다…
“젊었을 적엔 ‘국영수’로 먹고살았지만, 요즈음은 예체능으로 삽니다.” ‘국영수’로 장관까지 지냈지만 여생은 예체능으로 살아간다고 말하는 분이 계시다. 한번은 모임에 갔다가 우연히 그분이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하모니카를 부는 모습을 보았는데, 수준급 연주여서 깜짝 놀랐다. 은퇴 후…
인연이 닿아 이청준 작가의 단편집 ‘별을 보여드립니다’의 복간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복간본 옆에 나란히 진열된 초판본의 낯익은 표지를 보자 무척 반가웠다. 문학소녀 시절 그 책을 사서 비닐로 씌워 아껴가며 읽었던 추억 때문이다. 애지중지 보관하다 언제부터인지 잊고 지냈고 그러…
왕따인 고등학생이 있었다. 성적은 상위권이었으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늘 혼자였다. 고3 새 학기가 되자 그 학생이 음악선생님에게 찾아와 머뭇거리더니 점심시간에 음악실에 들어가서 피아노를 치면 안 되겠냐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선생님은 혼자 피아노를 치는 것보다 친구들과 어울…
여고 동창에게 전화를 받았다. 한 친구가 부친상을 당했으니 저녁에 영안실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 친구의 부름을 받은 동창들은 약속 시간에 모두 모였으나 정작 소식을 전해준 친구가 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우리끼리 먼저 조문을 한 뒤 한참을 더 기다리다가 전화를 했더니 그 친구가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