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주 전쯤 집 앞에서 택시를 잡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운전사가 “제 택시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택시운전사로부터 그런 인사를 들은 게 처음이라서 참 신선하고 반가웠다. “즐겁게 일하시는 모습이 참 좋아 보여요”라고 화답하며 목적지까지 기분 좋게 갈…
“선배, 우리도 건널까?” 후배가 눈을 찡끗하며 묻는다. 건널목의 초록색 신호등 불빛이 깜빡거리며 카운트다운에 들어갔고 사람들은 죽어라 뛰어가고 있다. 걸음아 나 살려라 뛰면 나도 건널 수 있겠지만 이런 경우 나의 대답을 후배도 알고 있다. “다음에 건너자.” 그 다음의 신호를…
2015년 새해 첫날의 글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쓰고 있자니 기분이 참 특별하다. 사실 나에게 상하이는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는 국제도시라기보다 일제강점기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어 우리의 자랑스러운 독립투사들이 활동한 근거지라는 어린 시절 최초의 배움이 강하게 남아 있는 도시다…
“메리 크리스마스!” 성탄절이라고 예서제서 문자가 날아든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나에게는 올해도 일주일이 채 남지 않았다는, 그러므로 정리할 게 있다면 서둘러야 한다는 신호로 느껴진다. 나는 사람을 오래 미워하기도 싫고 기분 나쁜 일을 마음에 오래 담아두는 것도 싫다. 인격수양이 …
열흘 이상 뜨거운 뉴스가 되고 있는 이른바 ‘땅콩 리턴’ 사건을 보면서 사람의 등급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비행기를 회항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그녀는 과연 퍼스트클래스인가. 비행기 일등석에 앉을 수 있는 상위 1퍼센트의 행복을 최악의 악몽으로 바꾼 그녀. 타고난 행운을 저버린 그녀를…
시인은 내게 어린 시절 그의 꿈은 마부가 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추운 겨울 귀를 덮는 털 달린 모자에 긴 장화를 신고 마차를 끄는 건장한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고 했다. 그래서 아홉 살 소년은 “나도 커서 아버지처럼 마부가 되겠다”고 했다가 아버지에게 된통 혼이 났지만 그때는 아버지가…
세상일은 반전이 있어서 재미있다. 예전에는 밭보다 논이 비쌌지만 대지 전용이 쉬운 밭이 논값을 앞지른 것은 한참 전 이야기다. 그리고 요즘 농촌에서는 할머니가 경로당에 계신 것이 아니라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손자뻘 아이들과 함께 가방을 메고 학교에 다니기도 한다. 전북 고창 미당문학…
내가 아는 분 중에 일 잘하기로 소문난 분이 있었다. 매우 유능해서 라이벌 회사에서 근무하는 선배가 스카우트 제의를 해올 정도였다. 그러나 존경하는 선배의 제의까지 거절하며 애사심을 발휘했는데 무슨 연유인지 하루아침에 한직으로 발령이 났다. 열심히 일했던 만큼 회사에 더 정나미가 뚝 …
수능의 계절이면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친목모임을 함께하는 한 분이 고3 아들을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날마다 밤 12시를 넘겨 귀가했다. 업무가 많은 데다 술자리를 즐기기 때문이었다. 아들의 수능시험 전날에도 예외 없이 술에 잔뜩 취해서 새벽 2시에 귀가해 자고 있는데, 아침 일…
점심을 먹고 인사동 사무실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여고 시절 국어선생님과 딱 마주쳤다. 총각선생님으로 인기가 많던 선생님이었는데 어느새 머리카락이 희끗한 노신사가 되셨다. 선생님을 모시고 찻집에 들어갔다. “세 가지 금이 중요하다는 말 알지? 그렇게 살고 있어.” 요즘 어떻게 …
곱게 물든 나뭇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지난 일요일에 목동성당을 찾아갔다. 지인이 사목회장으로 있는 강원 속초 청호동성당의 루도비코 신부님이 오셔서 특별강론을 한다고 해서였다. 그 신부님의 강론을 듣다가 어머니 이야기를 하는 대목에서 나는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열여섯에 시집 온 어머…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영국에서 키운 엄마가 있다. 그녀는 오로지 아들 교육만을 위하여 오랫동안 남편과 떨어져 살면서 아들에게만 집중했는데 그 덕에 아들은 세계적인 명문대에 합격했다, 아들이 대학 기숙사로 들어가자 비로소 서울로 돌아왔다. 그런데 자랑스럽던 아…
“제가 사는 집에 한 번 놀러 오세요.” 서울에서 만난 그분은 경주 양동마을의 대표적인 고택인 ‘향단’의 안주인이라고 했다. 첫눈에도 오백년 역사의 고택을 감당할 만한 당찬 인상이었다. 한 미국인 관광객이 “이 집이 얼마나 오래되었나요”라고 묻기에 “미국의 역사보다 훨씬 오래되었…
지난 주말에 전남 화순에 다녀왔다. 그곳에 사는 남편 친구는 요즘 산삼 캐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고 말했다. 근무를 마치고 금요일 밤에 심마니 수준인 지인과 함께 강원도로 떠나면 2박 3일을 산속에 머물다가 돌아오곤 한다는 것. 허탕 칠 때가 많지만 그렇더라도 산삼여행이 가져다주는 효…
요즘같이 햇빛이 고운 날에는 유럽에 사는 여고 동창이 생각난다. 아주 가끔 서울에 오는 그 친구는 햇빛만 보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서울에 사는 친구들은 양산을 펴거나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도 햇빛을 피해 그늘로 숨는데, 이 친구는 일부러 볕이 드는 곳을 찾아다닌다. 햇빛이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