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미술품을 고르는 나만의 감별법이 있다. 첫눈에 마음을 사로잡고 징소리의 여운처럼 긴 울림을 남기는, ‘시작은 단지 계속의 연장일 뿐’이라는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시 구절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내가 아는 한 종이학, 그것도 검은 종이학을 이토록 독특한 방식으로…
고상우는 완전한 사랑을 꿈꾸는 낭만적인 성향의 예술가다. 사랑이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아름다움을 꽃피우게 하고 영혼을 구원할 것이라는 믿음도 갖고 있다. 두 남녀가 황홀하게 키스하는 장면을 담은 이 사진작품은 그에게 사랑은 예술이며 종교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물이다. 키스하는…
저녁노을이 하늘과 바다를 꿈의 색깔로 물들이는 시각.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해비치 앞바다에 우뚝 선 나무 한 그루가 신비한 빛을 내뿜는다. 사진 속 나무는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판도라 행성에 사는 나비족과 교감하는 영혼의 나무를 떠올리게 한다. ‘아, 경이롭구나’ 감탄하는 한편 …
흔히 꽃은 고운 빛깔, 달콤한 향기, 수동적인 속성으로 인해 아름다운 여성에 비유되곤 한다. 의인화된 꽃은 조각가 이일호의 누드상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얼굴은 튤립이요 몸은 인간인 세 여성은 꽃의 요정이다. 이일호는 꽃의 요정을 예쁘고 날씬한 젊은 아가씨의 육체를 빌려 표현했다.…
그림의 배경은 어두운 도서관 실내. 흰 머리의 늙은 남자가 사다리에 올라선 채로 열심히 책을 읽고 있다. 남자는 한평생 오직 책만 읽으면서 살아온 책벌레다. 19세기 독일 화가 카를 슈피츠베크는 남자가 지독한 책벌레라는 정보를 기발한 방식으로 알려주고 있다. 먼저 책으로…
굳이 화가의 이름을 묻지 않더라도 누가 그렸는지 한눈에 알 수 있는 그림이 있다. 주제, 구도, 기법, 색채가 매우 독특해서 누구의 그림인지 느낌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차별화된 화풍을 가진 화가 중의 한 사람으로 함명수를 손꼽을 수 있겠다. 그의 그림의 두드러진 특징은 시…
‘예술가는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는 법을 배운 자들이다.’ 사진예술가인 데이비드 베일스, 테드 올랜드의 말이다. 지속하는 법을 삶에서 실천한 대표적인 예술가를 꼽는다면 인상주의 거장 클로드 모네를 들 수 있겠다. 모네는 눈 내린 맑은 아침, 까치 한 마리가 사립문 위에 앉아 있는…
그림의 배경은 어두운 실내, 탁자 위에는 이빨 달린 해골과 불타는 양초가 놓여 있다. 이 정물화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섬뜩하게 느껴지겠지만 미술인들에게는 낯익은 주제인 바니타스(vanitas) 그림이다. 바니타스란 ‘구약성경’ 전도서에 나오는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크리스마스카드 그림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행운의 화가가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미국의 화가인 토머스 킨케이드.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그림을 팔고 있는 그를 정작 평론가들은 B급 화가로 취급한다. 그의 그림은 달콤하고 아름답지만 예술적 가치는 없다는 것…
‘만종’의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는 대중적인 인기도가 무척 높다. 밀레의 그림만큼 전 세계적으로 복제되어 전파된 사례도 찾기 힘들 정도다. 대중이 밀레의 그림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땀 흘리며 일하는 농민상을 서정적인 분위기에 녹여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에게 친숙한 화…
자연현상에는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을 그리는 예술가들이 있다. 예를 들어 시간의 경과, 공기의 흐름, 빛의 변화, 영혼의 떨림 같은. 정보영은 보이지는 않지만 느낌으로 더욱 확실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들을 그리는 예술가 중의 한 사람이다. 화면 속에서 여러 개의 양초가 …
미술작품을 온전히 즐기는 나만의 감상법이 있다. 삶의 에너지가 넘치거나 도전정신을 일깨우고 싶을 때는 지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 작품을, 일상에 지치거나 위안이 필요한 때는 명상적인 작품을 감상한다. 이탈리아의 ‘국민화가’로 사랑받는 조르조 모란디의 정물화는 내면의 세계로 침잠하고 …
안창홍은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인 고독을 에로틱하게 표현하는 특별한 재능을 가졌다. 고독과 에로티시즘이라니, 언뜻 생각해도 두 단어는 전혀 공통점이 없는 데다 생뚱맞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젊고 섹시한 미녀가 개를 품에 안고 있는 이 그림은 에로티시즘이 고독을 전달하는 뛰어난 도구라…
먼 옛날부터 사람들은 하늘과 소통하고 싶은 욕망을 품었다. 지상의 삶을 초월해서 더 높은 세계에 도달하려는 인간적인 갈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획기적인 발명품도 개발했다. 바로 수직이동이 가능한 계단과 수직적 상승미의 극치를 보여주는 고딕식 건축물이다. 한지선의 작품에 마음이 끌렸던…
코르크 마개가 닫힌 투명한 유리병 속에 한 남자가 들어있다. 남자는 잔뜩 긴장된 표정과 자세로 그가 얼마나 극심한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고 있는지 말하고 있다. 병 속의 남자는 이 작품을 창작한 미국의 예술가 찰스 레이다. 찰스 레이는 자신의 몸을 직접 본뜬 작은 마네킹을 제작해 유리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