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전문기자인 내 일상이 여행으로 점철됐음은 당연하다. 아니 ‘여행=일상’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 모른다. 여행이 곧 일이고 일이 곧 여행이다 보니 여행 취재와 평소 일상이 딱히 구별되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어처구니없는 일도 겪는데 어느 날 새벽 외국의 한 호텔 객실에서다. 잠에서 깨…
2007년 3월 말 서울시내 한 특급호텔의 한식당.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손에 든 한 권의 책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핵무기의 가공할 위력과 핵테러의 현실적 위협을 경고한 ‘핵테러리즘(Nuclear Terrorism)’이란 제목의 책이었다. 저자인 그레이엄 앨리…
풋! 가끔 군대 회식 장면이 떠오른다. 천방지축 몸을 흔들어대는 젊은 수컷들의 집단막춤. 전 소대원이 미친 듯이 침상마룻바닥을 구르고,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팔다리를 제멋대로 건들댄다. 이제 갓 입대한 이등병에서부터 소대장에 이르기까지 온갖 허튼 춤사위가 동시다발로 펼쳐진다. 그야…
10여 년 전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네바다주립대에서 ‘카지노 통제규제이론’을 공부할 당시다.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데 한 여성이 다가와 “Spare coins(스페어 코인스)?”라고 말을 건넸다. ‘남는 동전 있느냐’는 이 말은 ‘한 푼 보태 달라’는 구걸의 관용구다. 그래서 동전 두 닢…
베르디와 바그너의 탄생 200주년이지만 한국 오페라계의 ‘대세’는 베르디의 45년 후배인 푸치니, 특히 그의 마지막 작품 ‘투란도트’다. 수지오페라단이 3월 29일부터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이 작품을 공연하고, 베세토오페라단도 10월 30일부터 같은 무대에 이 작품을 올릴 예…
“창설식이 끝난 직후 우리는 밴플리트 사령관에게서 뜻밖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들이 행방불명됐다는 것이다. 전폭기 조종사로 참전한 중위 밴플리트 2세는 전날 밤 B-26기를 타고 군산비행장을 발진해 북한 지역에 야간 폭격 차 출격한 후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밴플리트 사령관은 이미 …
햐아! 아직도 이런 식당이 있었구나! 4년 전인가. 우연히 그 밥집을 발견했다. 허름한 기와지붕의 가정식백반집. 들어서자마자 방 벽에 조그마한 액자가 하나 눈에 띄었다. 거기엔 주인장의 단정한 붓글씨가 써 있었다. ‘손님이 짜다면 짜다.’ 맛있었다. 정갈하고 담백했다. 반찬들이 심…
시카고(미국 일리노이 주)와 싱가포르. 두 도시는 막역한 관계다. 싱가포르가 시카고를 모델로 삼아 개발, 성장한 걸 두고 하는 말이다. 시카고는 ‘건축의 도시’다. 세계 최초의 마천루(1885년 완공된 지상 9층, 지하 1층의 홈인슈어런스빌딩)가 상징하듯 20세기 모던건축이 여기서 …
올해는 이탈리아의 오페라 거장 주세페 베르디(1813∼1901)와 독일 음악극(Musikdrama)을 정립한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의 탄생 200주년이다. 국내외에서 두 사람을 기리는 공연과 축제가 풍성하다. 비슷한 듯 대조를 보이는 두 사람의 삶이 새삼 눈길을 끈다. 두…
“지금 들어가면 언제 또 나올까….” 20여 년 전 군 입대 후 첫 휴가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는 발걸음은 천근만근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째깍째깍 귀대 시간이 다가올수록 1분 1초라도 더 바깥 공기를 만끽하고 싶은 ‘졸병’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칼 다림질’한 군복 차림으로 휴…
사르락! 사락! 설핏 책갈피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금세 싸르락! 싸락! 조리로 쌀 이는 소리가 이어졌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부엌에서 새벽밥 지으시는가. 문득 창문을 열고서야 도둑눈이 오신 걸 알았다. 민박집 함석지붕에 목화솜 같은 함박눈이 내려앉는 소리였다. 그렇게 밤새도록…
미국 샌프란시스코(캘리포니아 주)는 사랑스러운 도시다. 아직 못 가봤다면 꼭 한 번 찾을 일이다. 가끔 교통체증으로 옴짝달싹 못할 때면 나는 이 도시를 떠올린다. 기억 속 그 모습이 답답함과 조급증을 달래 줘서다. 1996년 5월이었다. 샌프란시스코를 떠나던 맑게 갠 하늘의 한가로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