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속에서 주름이 잡히고 숭숭 이빨이 빠진 시골길 할아버지의 모습. 충남 당진 안국사지석탑이 그런 이미지다. 세월의 억센 손에 무너져 탑신은 1층만 남았고 마치 길거리에 박혀 있는 큰 바윗돌 두 개를 대충 다듬어 놓은 듯한 장대석을 받침돌로 삼았다. 한때 결이 곱고 우람한 체격의 젊…
전남 구례군 화엄사 각황전 뒤편, 동백나무 숲을 끼고 있는 돌계단 위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는 탑이다. 삼층 기단 부분에 사자 네 마리가 기둥처럼 서서 탑을 받들고 있으며 그 가운데에 합장을 한 승상 조각물이 서 있는 독특한 모습이다. 사진·글=양현모
강원 평창군 월정사에 있는 고려 초기 대표적인 석탑 중 하나다. 몇 차례 화재에도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왜 저 탑이 하늘을 향해 놓인 계단으로 보이는 걸까. 세월호 영령들이 저 계단을 밟고 부디 좋은 곳으로 가기를 바라며 천천히 셔터를 눌렀다. 사진·글=양현모
통일신라 말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받침부가 매우 낮은 반면 1층 몸체는 폭에 비해 높다. 층마다 보살, 천왕, 선녀 등 다양한 인물상이 조각되어 있다. 가까이에서 층마다 새겨진 조각들을 천천히 뜯어보아야 하는 탑이다. 화가가 몰래 숨겨둔 화첩을 넘겨보는 것처럼 인물 선이 아름답고…
선비를 마음속에 품고 있지만 부끄러움에 말도 못 하고 서 있는 여인의 모습 같다. 2004년 경기도문화재자료 제133호로 지정되었다. 고려시대 말의 고승 나옹 혜근을 다비(茶毘)한 후 그 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글=양현모
전남 영암 월출산 도갑사에 있는 석탑이다. 탑의 전체 모습이 하늘을 향해 날개를 휘저으며 맹렬히 솟구쳐 오르는 한 마리의 매와 같아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눈이 오는 날 달려가 눈을 맞고 서 있는 석탑을 다시 찍고 싶다. 사진·글=양현모
진전사지 3층 석탑의 높이는 5m에 달한다. 현재 절터에 이 거대한 탑만 남아 있다. 진전사는 8세기 후반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단부와 1층 탑신에 새겨져 있는 부조가 눈에 띈다. 유려하게 천의자락을 날리는 ‘비천’과 구름 위에 앉아 있는 부조물의 대비가 돋보인다. 사진·글…
경기 여주시 신륵사 다층석탑은 특이하게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기단부에는 연꽃무늬와 함께 상층 벽면에는 운룡문이, 하층 벽면에는 파도문이 새겨져 있다. 문양들이 정교하고 몸체에 대리석 특유의 마블이 드러나 탑의 수려함을 더해주고 있다. 상단부는 날아가고 7층까지만 남아 있다. 사진·…
통일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낙산사 안에 있었으나 몇 해 전 화재로 손상됐다. 길쭉한 비례감과 기단부에 새겨진 스물네 잎의 연꽃무늬가 포인트다. 사진·글=양현모
경북 예천읍에 가면 절터도 거의 남지 않은 곳에 덜렁 탑 한 기가 서 있다. 고려 현종 때 건립된 개심사라는 절터다. 개심사지 5층 석탑은 2층의 기단 위에 5층의 몸체 구조로 이뤄져 있다. 하층 기단에는 십이지신상이 새겨져 있는데, 모두 사람의 몸에 각 동물의 얼굴을 하고 있다. 새…
경기 하남시 춘궁동에 있는 높이 7.5m의 5층 석탑이다. 2층으로 된 기단 위에 5층의 탑신(몸체)이 서 있다. 가장 꼭대기인 ‘상륜부’는 날아가고, 장식 부분인 ‘노반’만 남아있다. 안타깝게도 남쪽 면이 많이 부서져 내부가 보인다. 탑신 1층을 2단으로 구성하는 방식은 고려 때 시…
잘생긴 탑 앞에 무릎 꿇고 앉아있는 석조상(석조보살좌상·보물 84호)이 이색적인 탑이다. 탑 앞에 공양을 드리고 있는 석조상 보살이 걸치고 있는 옷 모양까지 섬세하게 남아있고 무엇보다 살짝 미소 짓는 온화한 얼굴이 아직까지 잘 남아있다. 사진·글=양현모
사진작가 양현모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찍은 ‘한국의 석탑’을 주 1회 연재합니다. 작가는 석탑 뒤에 검은 장막을 내려 탑이라는 피사체만 조명하는 독특한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에서 만나는 석탑들은 단아함과 군더더기 없는 깨끗하고 완벽한 비례를 보여줘 한국 문화의 또 다른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