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영화 ‘세 얼간이’ 주인공 ‘란초’는 극 중에서 자신의 친구들에게 역경에 부딪힐 때 “알이즈웰”이라고 외치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라고 한다. 사실 나도 힘든 일이 닥칠 때면 입 밖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하자! 즐거운 마음으로!”라고 몇 번 내뱉는다. 그렇게 하면 신기하게도 나…
“어떻게 신문에 칼럼을 쓰게 되셨나요”라는 질문을 가끔 듣는다. 그럴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조금 무겁다. 대부분 지인 추천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공개 채용하는 제도가 아닌 추천받아 ‘스카우트’하는 제도는 좋을까? 나쁠까? 일단 추천받아 뽑힌 사람의 입장에서는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
10년 전 교환학생 시절, 내겐 괴짜 같은 버릇이 하나 있었다. 캐리어 싸기. 인종차별이 있던 미국 중부의 외진 도시, 어른 키만큼 눈이 쌓인 1월의 기숙사는 내 마음만큼이나 추웠다. 이유 모를 시선과 키득거림에 좀처럼 익숙해지지 못하고 겉돌던 나날. 다 포기하고 내 나라, 내 가족에…
형사정책연구원의 ‘2016년 전국범죄피해조사’ 결과에 따르면 14세 이상 국민 10만 명당 1만1524건의 사기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사기 범죄 발생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한다. 세계보건기구의 2013년 ‘범죄 유형별 국가 순위’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
생애 첫 재택근무를 하게 된 회사원 A는 ‘개꿀∼’을 외치며 잠옷 차림으로 책상에 앉았으나, 오후 9시에 이르러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왜 아직도 일이 안 끝나는 거야.’ 7시면 ‘칼퇴’하는 회사생활에 비해, 하루 할당량을 채워야 메신저에서 로그아웃할 수 있는 재택근무는 높은 생산…
오래전 여행에서 돌아오던 길이었다. 핀란드 경유 중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비행편이 기체 결함으로 취소되었다는 것. 당장 출근을 해야 하는 터라 마음이 급해졌다. 그때 승무원 한 명이 “지금 ○○로 가면 선착순으로 티켓을 배정해준다”고 말했다. 주춤주춤하던 사람들은 어느새 미…
만화 ‘슬램덩크’의 명대사가 있다. “영감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국가대표였을 때였나요? 난 지금입니다.” 누가 나에게 영광의 시대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이전까지는 언제라고 대답할까 고민했겠지만, 이제는 단언해서 말할 수 있다. 내 영광의 시대는 2020년 2월 17일 낮 12시 …
정신병원 폐쇄병동에서 쓰인 일기를 본 적이 있다. ‘아침 일곱 시 눈을 떴고, 여기가 병원인 것을 깨달았다’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상태는 좀 어때요?” “아직 뭘 먹어도 지우개나 진흙을 먹는 느낌밖에 안 듭니다. 예전부터 심하게 땀이 나거나 과호흡 증상이 와서 힘들었는데, 가능하면 …
“도비는 자유예요(Dobby is free)!”를 아는가. 퇴사를 위해 구구절절한 사연 따윈 필요치 않은 ‘요즘 것’들은 가슴속에 사표 대신 ‘짤(meme·밈)’을 품는다.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노예 요정 도비가 해방을 기뻐하며 외치던 대사인데, 근래에는 회사를 박차고 나온 직…
재수 시절 기숙학원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을 지금까지 만나고 있는데, 비교적 직장을 빨리 구한 친구들은 모두 주식을 하고 있었고, 단체 채팅방은 늘 주식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맨날 단체 채팅방 구경만 하다가 재미있어 보여서, 부모님과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거금 100만 원으…
3주 전 ‘채식주의자가 될 수 있을까?’라는 칼럼을 쓰고 1월 한 달간 고기, 생선, 유제품, 계란을 먹지 않는 ‘비건’에 도전했다. 이왕 하는 거 몸에 안 좋다는 밀가루와 카페인도 끊어보기로 했다. 비건 입문서라 불리는 김한민 씨의 ‘아무튼, 비건’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비건은 …
이탈리아 원작의 영화 ‘완벽한 타인(Intimate Strangers·2018년)’은 결국 모두가 ‘타인’이라는 냉혹한 현실을 말한다. 시작은 단순한 장난이었다. 오랜만에 모인 40년 지기 친구들이 휴대전화를 두고 게임을 시작한다. 휴대전화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오는 전화, 문자를 모…
딸의 출생이 임박했다. 아내의 출산 예정일은 2월 23일이다. 초산의 경우에는 대개 실제 출산일이 예정일보다 늦다고 하니, 아마도 내 딸을 만날 수 있는 날짜는 2월 마지막 주 어느 날이 될 듯하다. 설레는 마음으로 2월 달력을 보다가, 낯선 존재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 존재는 바로…
작년 여름 작업실에 한 가수를 초대한 적이 있다. 이곳에서 뭐든 해보자는 제안에 그는 아주 ‘신박한’ 아이디어를 냈다. “노래방을 여는 게 어떨까요? 제가 반주를 하고 팬들이 와서 노래를 부르는 거예요. 제 노래는 노래방 기계에 없으니까!” 천재 같았다. 바로 실행에 옮겼고 25명이 …
지독한 ‘기록 병’을 앓고 있다. 집에는 매년 두 권씩 써 내린 다이어리가 한 보따리다. 작년 오늘, 재작년 오늘은 물론이고 10년 전 오늘까지 내가 무엇을 했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하물며 점심으로 누구와 무엇을 먹었는지마저도 마음만 먹으면 모두 알 수 있다. 기록 없이 흘러간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