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드업 코미디라는 장르가 있다. 코미디언이 홀로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고 관객을 웃기는 코미디다. 처음 접한 건 친구의 자기소개 문구였다. “인생 삼모작을 위해 틈나는 대로 넷플릭스를 보며 스탠드업 코미디를 연마 중이다.” 당시 넷플릭스가 한국에 진출하던 때였고, 눈 밝은 이들이 하나…
기고 기사와 관련해 짧은 자기소개를 요청 받았다. 하는 일과 지향점을 포함한 200자 자기소개를 쓰는 일이 2000자 자소서를 쓰는 일보다 어려울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나의 역할과 철학을 두세 문장으로 축약해 정의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마치 ‘나’라는 단어의 …
한 사진가가 들려준 이야기. 전북 정읍에 기록적 눈이 내리던 날 택시 한 대가 논바닥에 처박혔다. 기사는 피를 뒤집어쓴 채 의식을 잃었다. 하지만 부모의 성화에 떠밀려 학교로 향하던 뒷좌석의 꼬마는 놀랍게도 생채기 하나 없이 멀쩡했다. 상황이 무서워진 그는 곧 택시를 팽개치고 달아났다…
해외 직구로 산 빔 프로젝터가 고장이 났다. 자취하면서 구입한 제일 비싼 물건이었는데, 국내에선 서비스도 안 된단다. 욕이 절로 나온다. ‘망했네, 혈압 오른다….’ 그런데 그날따라 태연했다. 급기야 고장 난 리모컨을 바라보며 (사실 프로젝터 본체는 멀쩡했다. 더 환장할 노릇) 속으로…
며칠 전 퇴근길 우연히 학교 선배와 마주쳤다. 근 십 년 만에 만나는 익숙한 얼굴에 긴가민가하다 조심스럽게 “저 혹시…” 말을 걸자 저쪽에서도 반색했다. 오랜만이다, 잘 지냈냐, 안부를 묻는 것도 잠시. 금세 침묵이 맴돌았다. 먼저 어색함을 깬 건 선배 쪽이었다. “어, 그래! 연락하…
오늘 칼럼 제목은 한동안 즐겨 듣던 노래의 가사에서 따왔다. 가수 XXX(엑스엑스엑스)의 ‘뭐 어쩔까 그럼’. 멤버인 래퍼 김심야가 자신의 행보를 이야기하는 내용으로, 논조가 자꾸만 돈으로 흐르고 그럴 때마다 반복해서 ‘이제 돈 얘긴 그만’ 하자고 스스로 다잡는 구성이 재미있다. …
글 쓰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여행 중 있었던 일을 쓰고 싶은데, 에세이 특성상 나와 주변 인물들이 드러나니 솔직한 마음을 쓰기가 주저된다고 했다. 혹시 당사자가 보는 게 걱정된다면 입장 바꿔 생각했을 때 괜찮을 정도로만 써 보라 했다. 그리고 혹시 서운한 마음이 있거들랑 살살 하라…
어릴 적 내겐 남모르는 콤플렉스가 있었다. 무엇에든 쉽게 마음이 동하고 큰 고민 없이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반면, 그 추진력에 비해 지속성은 한없이 미약했기 때문이다. ‘시작을 했으면 끝을 봐야 한다’고 하고 ‘우물을 파도 한 우물만 파라’고 하는데 나는 늘 대여섯 개의 우물을 한번에…
오늘도 엄마는 결혼정보업체를 알아보신다. 부모의 소원은 딸이 하루빨리 결혼하는 것. 세상에서 나를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그들이란 걸 잘 알지만, 결혼에 아무런 관심 없는 서른 살 딸을 하루빨리 시집보내고 싶어 하는 마음은 당최 이해할 수가 없다. 가끔은 숙제처럼 얼른 해치우려는…
“요즘 애들이 그렇더라니까.” 새로 들어온 후배 사원의 흉을 보는 친구 이야기를 듣다 흠칫 놀란다. “야, 우리도 아직 요즘 애들이야.” 손을 내저어 보지만 알고 있다. ‘요즘 애들’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 자체가 우리는 이미 그 바깥의 영역에 속함을 뜻했다. 근래 들어 이렇게 종종 스…
나는 간간이 달린다. 칼럼의 첫머리를 이 문장으로 해야 할지 “하지(夏至) 무렵이다”로 해야 할지 조금 망설였다. 동트기 전에 나가서 해 뜰 때까지 달리곤 하는 내게, 두 문장이 비슷한 여운을 띠기 때문이다. ‘달린다’거나 ‘하지’라고 소리 내어 말할 때, 마음속에는 푸른 듯 온화한 …
요즘 행사 기획 일에 미쳐 있다. 누가 시키지도 않고, 돈도 안 되는데, 눈만 뜨면 생각나고 하고 싶다. 이 일은 사랑에 빠졌을 때와 비슷한 기분을 들게 한다. 첫째는 내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내 마음을 움직이는 상대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고, 셋째는 그래서 우리가…
가끔 가슴이 갑갑할 때면, 사회 초년생 시절 처음으로 독립해 머물렀던 동네를 찾는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8개월, 살았다고 하기엔 짧지만 여행했다고 하기엔 충분히 긴 시간. 반짝이는 천이 흐르고 푸른 숲이 우거진, 아기자기한 카페가 즐비한 사랑스러운 동네. 그리고 그곳에 처음…
늦봄과 초여름 사이. 이맘때 유독 자주 받는 안부 인사가 있다. “여름휴가 계획은 세우셨나요?” 하루가 다르게 뜨거워지는 햇볕은 올해도 우리가 고통과 무기력과 불쾌감의 구렁텅이(한여름)로 착실히 걸어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여름휴가 같은 도파민 덩어리로 머리를 헹구지 않고…
어렸을 적 엄마는 내가 친구들이랑 노는 걸 탐탁지 않아 했다. 한 번은 친구를 집에 데려왔는데 나를 뒷방으로 불러 귓속말로 얼른 보내라고 했다. 친구랑 노는 건 시간낭비며 그 시간에 문제집 하나라도 더 풀길 바랐던 엄마. 그런 엄마가 친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첫째는 동생이 학교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