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막례 할머니’라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 올해 72세 박 할머니의 온갖 도전기를 동영상으로 다루는 계정으로 구독자가 64만 명이 넘고 국내외 유력 매체에도 소개됐다. 최근 박 할머니의 채널에는 ‘맥도날드 이용 도전기’ 영상이 업로드됐다. ‘막례앓이’로 불릴 만큼 인기를 끌고 있는 계…
새로 사귄 한 친구는 그림으로 사람의 속마음을 읽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심리 상담가의 딸로 태어나 자연스레 터득한 기술이라 했다. 내게도 해주겠다기에 집으로 초대했다. 일대일로 했다간 나를 다 들킬까 겁나 동네 친구들을 불렀다. “그림은 무의식을 반영하는 좋은 수단입니다.…
어릴 적 괴짜 같은 버릇이 하나 있었다. 오늘 하루가 목표한 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조용히 눈을 감고 벽에 기대 열을 세고는 다시 눈을 떠 마치 아침에 막 일어난 양 새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일이었다. 소위 ‘오늘은 망했다’는 판단이 서면 좀처럼 잘해 볼 마음이 들지 않아 스스로 …
내게 특별한 능력이 생겼음을 깨달은 건 3년 전 연말이었다. 상하이의 한 클럽에서 새해를 기다리던 2016년의 마지막 밤. 문득 둘러보다 알게 된 건, 놀랍게도, 내가 이국의 연말 군중에서 한눈에 한국인을 골라낼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었다. 그날 그 클럽을 벗어난 후에도 능력은 지속되…
연말이면 늘 주문하는 책이 있다. ‘한 해를 정리하는 100가지 질문’을 담은 독립출판물, ‘연말정산’이다. 1년 동안 벌고 쓴 돈을 정산하듯, 지나간 시간을 기록해 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백문백답 노트다. 이 책 속 질문들을 따라가다 보면 휴대전화 사진첩엔 없는 기억들이 떠오른다.…
‘퀸’ 열풍이 심상치 않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800만을 눈앞에 두고 있다.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의 흥행 스코어로 퀸의 본고장인 영국까지 넘어섰다.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고, 너도나도 N차 관람을 인증하기 바쁘니 이대로라면 천만은 거뜬해 보인다. 관객…
친한 선배가 충무로에 카페를 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5층에. 현대인에게는 건물 다섯 층을 계단으로 오를 기회가 흔치 않기 때문에, 인사차 방문한 나는 입지가 썩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술을 사오기 위해 한 차례 더 왕복하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양손 가득 봉투를 들고 어깨로 문…
카메라에 담고 싶은 사람들이 생겼다. 그래서 영상을 찍어주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이다. 약속을 잡고, 반나절 찍어 밤새 편집했다. 만들고 보니 꽤 마음에 들어 몇 번이고 돌려 보았다. 문득 이런 게 얼마만인가 싶었다. “돈을 벌수…
아침저녁으로 영하권을 간신히 웃도는 날 선 공기가 새로운 계절에 접어들었음을 알린다. 곧 거리는 트리 장식과 캐럴로 뒤덮일 것이고, 사람들은 가벼운 흥분과 함께 크리스마스 계획을 세울 것이다. 두꺼운 외투와 솜이불이 필요한 계절, 겨울이 왔다. 그리고 그 말인즉슨 주변의 이웃을 돌아볼…
글에 앞서, 우선 적절치 않은 용례로 따옴표를 남발한 제목에 대해 사과해야겠다(아마도 국립국어원에). 애초에 따옴표 없이 써놓고 보니 어째 너무 당연한 표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직접 ‘서점’까지 가서 ‘책’을 고르고 ‘산다’는 게, 어디 그리 말처럼 당연한 일인가. 사…
친구네 할머니 댁에 놀러갔다가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전쟁 통에 부모를 잃은 할머니는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신랑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혼례 당일 신랑 얼굴을 처음 보았다고 했다. ‘할머니 그때 기분이 어땠어요?’ ‘무서웠지. 할아버지 인상이 워낙 험상궂어 가지…
출근길, 신호등이 깜박이자 모두가 일제히 전력질주를 시작한다. 아주 지각한 것만 아니라면 나는 되도록 뛰지 않는 편을 택한다. 신호등을 기다리는 2분 남짓한 ‘허락된 무료함’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것 또한 좋아한다. 이동 시간이 길면 길수록 좋다. 차창…
38년의 절반을 울산에서, 절반을 서울에서 살았다. 그러다 보니 고향에선 “니는 이제 서울 사람 아이가!” 소리를 듣고, 서울에선 “경상도 출신이시죠? 사투리가 남아 있네요” 소리를 듣는다. 양쪽 어디에도 온전히 녹아들지 못하는 느낌이고 가끔은 스스로도 헷갈린다. 서울과 고향의 기류가…
늘 문턱에 걸려 놓쳐버리듯 내는 잡지와 기사건만, 지속적으로 관심을 내비쳐 주는 지인들이 있다. 감사한 일. 그러나 굳이 기대를 저버리며 글을 시작하자면 이 칼럼의 주제를 듣는 반응은 어째 한결같이 심드렁했다. 20대 후배 하나가 내놓은 솔직한 답은 이랬다. “사실 007 영화 한 번…
나의 좌우명은 ‘좋가치’다. ‘좋은 건 같이 보자’의 줄임말이다. 중학교 시절, 시험이 끝나고 함께 볼 비디오를 빌려 오는 건, 반 아이들의 mp3 플레이어에 음악을 채워주는 건 늘 나의 임무였다. 숨은 보석을 세상에 알릴 때 가장 뿌듯함을 느꼈다. 좋아하는 것의 가치를 널리 퍼뜨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