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읽었던 전래동화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외아들을 둔 어느 부자가 있었다. 부자는 아들의 친구 사귐이 가벼워 보여 걱정이 됐다. 그는 돼지를 잡아 지게에 올리고 사람을 죽였다며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해보라 시킨다. 많다고 자랑하던 아들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문을 걸어 잠그고 아들…
얼마 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모든 층에서 흡연은 금지되어 있다’며 건물 내 흡연을 삼가 달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안내문에 여백이 많아서 그런지 하나둘 손으로 쓴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간곡한 부탁과 이해를 구하는 문장이 달렸지만 그간 쌓인 감정의 골이 깊었는지 이내 과격해…
소설가 김영하 씨의 산문집 ‘말하다’에는 그가 대학 시절 학군후보생을 중간에 그만둔 때의 일화가 나온다. 당시엔 학군단을 거쳐 장교로 임관하면 전역과 동시에 대기업으로의 취업이 보장되었다는데, 그 꿀보직을 그만둔다니 당연히 주변은 발칵 뒤집혔다. “지금까지 해온 게 아깝지도 않냐?”는…
심란하다. 검은색 찍찍이가 달린 게 제일이라고 해서 샀는데…. 아무리 봐도 초등학교 시절, 축구를 좋아하던 노총각 선생님이 여름 캠프 날 신고 온 신발 같다. 내 옆을 스치던 여성분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친구에게 속삭였다. “야, 솔직히 이걸 5만 원 주고 사는 건 좀 아니지?” “당…
나는 아저씨가 되지 않을 줄 알았다. 적어도 아저씨로 변하는 과정이 이토록 자연스러울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아저씨 같다”는 말은 언제나 농담이었다. 이젠 아니다. 어느새 주변에도 완전한 아저씨들이 넘쳐흐른다. 아저씨가 되기 싫었다.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저씨는…
결혼한 지 반년 정도 지났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결혼 전에는 약간 환상이 있었다. 대학 시절 읽었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라는 책에 나온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 부부 때문이다. 이들의 관계는 동반자이면서 동지였다. 같은 관심과 목표를 추구하며 문학과 음악, 사회를…
“그 회산 진짜 좋은 회사였어∼ 나와 보니까, 알겠더라고.” 예상했던 대로다. 얼마 전 직장을 옮긴 그는 세상 다 초월한 얼굴로 맥주를 쭉 들이켜곤 이제는 익숙한 저 대사를 쳤다. 내 어깨를 도닥이며 “넌 꽉 붙어 있어”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고. 아무 말 없이 빈 잔을 채워 건…
여기 101명의 소년이 있었다. 춤과 노래는 기본, 거울을 보며 윙크와 애교까지 연습하는 남자들. 그들의 꿈은 아이돌이다. 아이돌을 꿈꾸는 남자들이라…. 왠지 잘 그림이 그려지질 않는다. “다음 참가자∼” 했을 때, 기타 하나 메고 수줍게 등장하는 싱어송라이터는 아닐 테고, 돈과…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칭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부상의 위험을 줄이고 더 나은 동작을 만들어 낼 수 있게 해준다는 이유에서다. 재밌게도 스트레칭이 필요한 곳은 근육만이 아닌 듯하다. 고정관념에 쉽게 빠질 수 있는 우리의 머리도 꾸준한 스트레칭이 필요해 보인다. 사고를 유연하게 하여 오류를…
얼마 전 중학교 남자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있었다. 한 아이가 교실 안에는 권력이 있다며 “싸움을 잘하거나, 공부를 잘하거나, 잘생긴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자신은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아 평민을 맡고 있지만, 그래도 왕따는 아니라며 웃는 아이에게 교실에서 잘생긴 아이들이 왜…
지난달 영국 록 밴드 콜드플레이의 첫 내한 공연이 있었다. 총 10만여 개의 좌석은 3분 만에 매진되었다. 공연 당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타임라인은 그들의 멋진 퍼포먼스와 ‘떼창’에 대한 감격으로 넘쳐흘렀고, 마치 나만 빼고 다 공연장에 간 것 같더라며 놀라워하는 내게 누군가…
대학교 3학년 때, 부산국제영화제 자막팀에서 일한 적이 있다. 나의 업무는 자막보조. 스크린에 자막을 쏘는 일이었다. 정확히 말해 쏘는 건 기계 일이어서, 나는 그 옆을 지키며 전원 버튼을 누르는 게 다였다. 이 일을 자원한 목적은 단 하나, 마음껏 영화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나…
봄을 맞아 푸르게 피어나는 산과 들을 보노라면 무작정 내달리고 싶은 충동이 인다.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친구들을 연신 불러대며 녹초가 될 때까지 뛰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어린이날의 설렘을 여전히 기억한다. ‘북포국교’라고 적힌 졸업장 덕분에 겨우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하늘이 뿌옇다. 청명한 하늘을 본 게 언제였나 싶다. 날씨 정보는 미세먼지 나쁨을 알리고 있지만 워낙 자주 나쁨이어서 진짜 바깥 활동을 자제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사람들과 만나도 하늘 상태로 인사를 나누고, 미세먼지 때문에 겪고 있는 여러 질환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
2000년대 예능 프로그램에 ‘당연하지’ 게임과 쌍벽을 이루던 ‘단어 말하게 하기’ 게임이 있었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말해야 하는 단어가 ‘짜증 나!’일 경우, 답은 가르쳐 주지 않은 채 최선을 다해 짜증 나게 해 그 말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보통 원하는 답을 정확히 듣기란 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