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첫 면접을 보았다. 꿈에 그리던 한 방송국의 시사교양PD. 주위를 둘러보니 서류에 붙은 친구들이 거의 없었다. 1년의 경력이 있어야 하는, 소위 ‘중고 신입’을 뽑는 경력직 공채였기 때문이다. PD를 꿈꾸는 친구들은 진로에 있어 빠른 결정을 내려야 했다. 1년에 한 번 있는…
한 달여 만에 본가를 찾았다. 적적한 집이다 보니 나 한 명 식탁에 추가되는 것이 큰 행사가 된다. 어머니는 평소에 잘 드시지 않는 반찬을 상에 올리셨다. 내 덕분에 진수성찬을 구경한다는 아버지의 농담이 어딘지 외롭다. 즐거운 식사가 끝나고 남은 음식을 넣으려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
최근 미국에 사는 친척집에 머무는 동안 의아한 이야기를 들었다. 내일 친한 동료가 결혼을 하는데 자신은 하객으로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결혼 당사자들이 시청에서 혼인신고를 한 후 가족들과 식사하는 것으로 결혼식을 대신하기 때문이었다. 예비 신랑이 실리콘밸리 유명 정보기술(IT) 기업…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타임라인을 훑어보다가 한 게시물에 눈길이 멈췄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의 출석번호가 ‘58번’이라 놀랐다는 한 학부모의 글이었다. 학생 수가 30명이 채 되지 않는데 어떻게 58번인지 궁금해서 딸에게 물어보니 그 학교는 남학…
동생이 바보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친구는 말했다. “아니, 자기소개서에 이런 말을 쓰는 사람이 어디 있어?” 태어나 처음 써 보는 ‘자소서’ 앞에서 그 아이는 너무 솔직했다. 성격의 장단점을 쓰라는 질문에 너무 치명적인 단점을 써버린 것이다. ‘저는 게으르고 책임…
개업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간판 불이 나간 적이 있었다. 간단히 해결했지만 시작부터 기분 나쁜 일이 벌어지니 마음이 심란했다. 가게에 부정 탈 만한 일이 생기면 쑥을 태워 연기를 내고 막걸리를 뿌리면 좋다는 말을 듣고 조용히 실행에 옮겼다. 잘 타진 않았지만 마음은 다소 편안해졌다.…
나에게는 몇 년째 고생을 하고 있는 지병이 있다. 어깨의 힘줄 사이가 굳어져 통증이 생기는 것인데, 오랫동안 방치하다가 상태가 굉장히 심각해졌다. ‘무릇 21세기 직장인이라면 이 정도 뻐근함은 어깨에 하나씩 달고 다니는 것’이라며 안일하게 내버려둔 것이 화근이었다. 더 이상 고통을 참…
몇 년 전 아버지는 눈이 부쩍 침침해져서 운전대를 내려놓았다. 난 가족할인 가격으로 차를 인계받았고, 내게 맞게 차를 정리하던 중 해묵은 지도책 하나를 발견했다. 휴게소에서 샀을 법한 그 지도책을 보니 항상 먼 길 가기 전 한참이고 들춰보던 아버지 모습이 기억났다. 난 지도책을 치우고…
내가 어렸을 땐 ‘정글짐’이 유행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키즈카페 같은 곳인데 당시엔 부잣집 친구들이 생일파티를 할 때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승합차가 데리러 와, 다같이 우르르 타고 갔던 기억이 난다. 그곳의 메인은 플라스틱 공으로 꽉 찬 공 풀장인데 친구가 별로 없던 나는 거기서…
중학교 친구 동혁이는 어릴 때부터 대장장이가 되는 게 꿈이라 했다. 손에 굳은살이 박이고 아무렇게나 수염을 기른 채 뜨거운 용광로 곁에서 쇠망치를 내리치며 연장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그때 나는 그의 꿈을 이해하지 못했다. 번듯한 양복을 입고 고운 손 유지하며 살 길이 충분히 많은데…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가 인사이동 시즌을 맞았다. 이맘때쯤이면 올해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기존 팀을 구성하고 있던 인력들이 다시 헤쳐 모이게 된다. 인사이동이란 것이 늘 그렇듯 누구와 한 팀이 될지, 어떤 일을 하게 될지에 관한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고, 그 바람에 회…
올해도 어김없이 설 명절이 지났다. 얼마 전 결혼한 새신랑이다 보니 이곳저곳 방문하느라 모처럼 분주한 설을 보냈다. 과거에는 지나치면 남남이었을 사람들과 이제는 일가친척이라는 지붕 아래 어떻게 불러야 할지 인터넷으로 정확한 호칭부터 살펴야 하는 관계가 되었다. 지금까지 내 편에서만…
“도대체 남자는 어디서 만나지?” 우리 대화의 주제는 항상 연애였다. 오랜 시간 솔로였던 내 주위엔 솔로들로 넘쳐났다. 누가 이들을 ‘삼포세대’라 했던가. 이토록 열렬히 연애를 원하건만! 다만 우리에겐 자연스럽게 이성을 만날 수 있는 장이 부족했다. 인맥에 의존하는 소개팅, 성공률 …
2년이 넘도록 공무원 시험에 매달렸다. 결과는 두 번 연속 낙방. 시험 성적은 공부 기간과 비례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현실적인 대책을 찾아야 했다. 2년의 시간을 처음부터 다시 짚어보기로 했다. 시험을 준비하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처음 보는 과목들의 두꺼운 책을 받…
3주간의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직장인에게는 꽤나 긴 여행이라 행여 낯선 곳에서 대단하고 거창한 일이라도 생기려나 싶었는데, 그런 들뜬 마음이 무색하게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소매치기로 악명이 높은 여행지였지만 그 흔한 도난사고 한 번 당하지 않아 무탈하고 조금은 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