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칙칙칙’ 오후 다섯 시가 되면 앞집, 옆집에서 밥 짓는 소리가 들린다. 밥 짓는 고소한 냄새를 맡으면 생각나는 곳이 있다. 첫 번째 작업실이 있었던 동네의 밥집이다. 이름은 ‘가정식당’. 이름처럼 집에서 만든 밥 반찬 국을 주던 곳이다. 정말 이름처럼 가정집 주방에서 아주머니 두 분…
최근 유명 연예인 커플이 강원도의 한 민박에서 소박한 결혼식을 올려 화제가 되었다. 밀밭을 배경으로 펼쳐진 결혼 풍경은 사진으로 봐도 탄성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들꽃으로 장식하고 가마솥에 국수를 삶아 먹는 결혼이라니, 생각만 해도 아름다웠다. 나도 꿈꾸던 결혼이 있다. 탁 트…
“다른 건 됐고, 결혼을 해. 결혼을.” 친구들과 찾아간 인사동의 한 사주집에서 아저씨는 과년한 여자들이 던지는 질문(“일은요?” “시험은요?” “직장은요?”)을 ‘남자’와 ‘결혼’으로 일축했다. “지금 시험운이 2고, 결혼운이 8이니 될 법한 걸 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 …
서울 문래동의 한 공간에서 전시를 한 적이 있다.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이지 않을까 싶은 전시였다. 책을 만들며 제작한 소품을 뒤죽박죽 펼쳐놓은 엉터리였지만 즐거운 경험이었다. 여러모로 부족한 탓에 공간 운영자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게 뭐 대단한 일인가 싶지만…
친구 J에게 문자 한 통이 왔다. “나 원숭이 같아.”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싶어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J의 목소리는 힘이 빠져 있었다. 지금 막 사진관에서 면접용 증명사진을 찍고 나오는 길이라고 했다. 오랜만에 머리도 매만지고, 사진을 찍기 위해 구매한 정장도 입고, 간밤에…
외할머니의 첫 제사가 다가온다. 본가가 먼 탓에 제사에 참석하려 여름휴가 날짜까지 조정해 두었다. 다른 해처럼 혼자만의 피서를 즐기거나 여행을 떠나지 못하지만, 별일 없이 외할머니를 만나러 갈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대학에 가기 전까지 20년 정도를 함께 산 외할머니가 갑자기 …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 중에, ‘안정’만큼 안정적이지 않은 말이 또 있을까. 안정적인 삶, 안정적인 관계, 안정적인 직장…. 우리는 저마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인 양 말한다. 평생 걱정 없이 회사에 다니고, 평생 내 곁을 지켜줄 동반자를 찾고, 그렇게 걱정 …
이따금 책을 만든다. 무언가 특출난 재능이 없으니 출판사를 통해 책을 냈을 리는 만무하고. 제대로 하는 거 하나 없지만 혼자서 편집자가 됐다 디자이너가 됐다 하는 식으로 북 치고 장구 치며 책을 만들고 있다. 이렇게 제작하는 방식을 셀프 퍼블리싱 혹은 소규모 출판이라 부른다. 기획에서…
스물하고 일곱. 아직 이십대다. 올해도 이십대의 시간을 숨차게 보내고 있다. 여름인 탓도 있고. 주변인이라고 말하는 청소년기에는 이십대가 되면 애매한 생활에서 벗어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십대 후반에 들어선 지금도 주변인처럼 살고 있다.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미성년자도 아…
올봄 함께 일하는 3명의 팀원과 중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워크숍이었지만, 대부분의 일정이 먹고 즐기는 것이라 모두 들떠 있었다. 오전 일찍 여행지에 도착한 우리는 계획대로 호텔에 짐을 맡기고 시내 투어를 떠났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체크인을 하기 위해 호텔로 돌아올 때까지만 해도 모든…
“난 서른 정도 되면 다 자기 집을 가질 수 있을 줄 알았어.” 친구가 말했다, 월세를 내며 단칸방에 사는 서른셋의 나에게. 친구야, 적어도 넌 전세잖아…. (절반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난 집 욕심이 없다. 하지만 서른이 되면 집은 없더라도 적어도 뭔가를 이루거나 어떤 분야의 전…
한동안 연락이 뜸하던 지인에게서 휴대전화 메신저로 메시지를 받는 일이 잦아졌다. 갑자기 웬일인가 싶어 확인을 해보면 백년가약을 알리는 모바일 청첩장 연결 주소가 파랗게 빛나고 있다.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이따금 맞이하는 상황이니 메시지 창을 열며 대충은 예상을 하게 된다. 사이가…
나에게는 동료가 한 명 있다. 딱 한 명이다. 개인적인 일을 제외하고 모든 일을 함께 한다. 그녀와 나는 소규모 출판사를 운영하고 잡지를 만든다. 그러니까 한 권의 잡지를 만들기 위해 해야 하는 모든 일을 함께 한다. 기획하고 사람을 만나고 인터뷰를 하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편집을…
최근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환경이 달라지니 낯선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됐다. 만나는 자리에선 자연스레 개인사를 이야기하게 됐는데, 나는 유독 “결혼은 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처음에 나는 “안 했다” 또는 “못 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고 나면 이래저래 피곤한 일이 생겼다.…
얼마 전, 유승준의 이름이 다시 뉴스에 올랐다.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병역을 기피한 일에 대해 인터넷 방송을 통해 사죄했기 때문이다. 제작진 몰래 케이블 음악 생방송에 출연하거나,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호시탐탐 한국으로의 귀환 의사를 밝혀 오던 그가 이번에는 자기 나름의 정공법을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