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 크면 사업은 하지 마라.”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자 아버지가 어린 자녀들(3남 1녀)에게 당부했다. 탄광 소장을 지낸 아버지는 인쇄소를 운영해 번 돈으로 금광 개발에 나섰다가 빚까지 지게 됐다. 정든 서울 약수동 한옥을 떠나 무허가 판자촌으로 옮겼다. 초·중학생 때 형편…
경기 여주에서 5남매(2남 3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부모는 여주에서 정미소를 운영하다 서울로 이사해 미곡상을 크게 차렸다. 어린 시절 동네 어른을 볼 때마다 해맑게 웃으며 인사해 사랑을 독차지했다. 학교에 다닐 때는 통장에 돈이 조금씩 쌓이는 것을 보는 게 즐거워 용돈은 물론이고…
전북 익산에서 10남매(6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많은 자식을 먹여 살리려고 농사를 지으면서 닥치는 대로 부업을 했다.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을 만큼 강하고 자존심이 셌다. “등록금이 싼 서울대에 못 갈 거면 막노동이나 하고 살아라.” 어머니는 대학 학비를 대줄 형편…
서울에서 8남매(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은 광복 후 말 세 필로 곡물을 배달하는 운송업을 했다. 신여성인 모친은 자녀 교육에 힘썼다. 그 영향으로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았지만 8남매 모두 대학을 나왔다. 어린 시절 부모가 강조했던 정직을 지금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
어린 시절 호기심이 많았다. 궁금한 게 있으면 참지 못해 주위에 묻거나 백과사전을 보며 이해할 때까지 배웠다. 좋아서 하는 일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했다. 커서 과학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서울대 미생물학과를 마치고 KAIST 대학원(생명과학과)에 진학했다. 양규환 교수 밑에…
광복 후 귀국한 재일동포 가정에서 8남매(6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고향 집은 경북 의성군 다인면 중심가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제때 졸업하지 못했다. 그러나 주눅 들지 않으려고 늘 자신 있게 행동했다. 그의 부모는 사람에게 가…
1948년 전남 보성에서 3남매(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병환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 얼굴조차 기억에 없다. 졸지에 남편을 잃은 어머니는 갖은 고생을 하며 억척스럽게 자녀를 키웠다. 독학으로 한글을 깨친 어머니는 자식들을 엄하게 가르쳤다. 품앗이로 모내기를 할 때 하나…
경북 고령에서 6남매(2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은 약 40가구가 사는 작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방앗간을 운영했다. 가정 형편은 어려웠다. 빨리 취업하기 위해 인문계 고교 대신 공고에 입학했다. 동양공고를 나와 공장에 들어갔다. 친구들이 공부를 잘하는데 왜 취직하느냐며 …
전북 장수에서 농부의 5남매(1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학비가 없어 중학교에도 못 갈 만큼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오수중 입학시험에서 1등을 해 3년간 학비를 면제받았다. 공부에 대한 열의로 집에서 8km 떨어진 중학교를 걸어 다녔다. 빨리 취업하려고 전주공고(기계과)에 진학했…
경북 영주에서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은행원을 꿈꿨다. 부친은 초등학교 교사였으나 박봉이라 6남매가 배불리 먹는 것조차 어려웠다. 굶지 않고 살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때 암산대회에 나가 입상할 만큼 산수도 잘했다. 당시 봉급을 많이 주는 은행은 최…
“일생의 업으로 삼아도 되겠다.” 1982년 국비 유학생(박사 과정)으로 미국 미시간대에 가 보니 로봇 연구가 한창이었다. 로봇이 상상 속에 머물지 않고 현실 가까이 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로봇공학을 처음 접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아톰, 철인28호 같은 만화나 공상과학(…
“레이저 의료기를 개발합시다.” 40세 때인 1997년 창업한 그는 직원 6명에게 사업 방향을 밝혔다. 어떤 제품을 어떻게 만들지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다만 피부 미용에 쓰는 레이저 의료기를 개발하면 많은 사람에게 아름다움과 기쁨을 주고 회사도 성장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
“구두 만드는 법 배워 볼래?”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마친 뒤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취업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때 충남 서산에서 구둣방을 운영하던 작은아버지가 돈벌이도 괜찮다며 제화 기술을 권했다. “해보겠습니다.” 16세 때 수습공으로 구두와 인연을 …
“학습지 어떻습니까?”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7남매 중 셋째인 그는 1974년 제대일이 다가오자 뭘 해서 먹고살지 걱정이 됐다. 그때 친하게 지내던 후임병이 아이디어를 줬다. 학습지 대리점을 해보라고. 외출을 나가 가능성을 확인했다. 제대 5일 후 부친의 도움을 받아 고향(경남 고…
정부 담당자의 말을 듣자 묵은 체증이 싹 가신 듯했다. 대학 교수인 그는 3년짜리 정부 연구과제를 맡아 1년간 주관했다. 생체물질의 미세한 변화를 분석할 수 있는 초소형 기기인 바이오 멤스를 개발하는 과제였다. 그런데 2년 차부터 사업화할 중소기업이 과제를 주관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