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자운(子雲) 형, 사경(思卿)은 한마을에 살았다. 이번 봄여름 사이 오랫동안 가물었기에 세 집 모두 담장을 수리하기로 하였다. 나는 종들에게 일을 시키고 한 번도 가서 살피지 않았는데 며칠 만에 일이 끝났다. 사경 역시 나처럼 하였다. 단지 자운 형만은 매일같이 담장 수리하는 곳…
옛날에 왕계(王季)가 도적에게 잡혀 죽게 되었다. 형 왕림(王琳)이 스스로 결박하고 도적에게 나아가 아우보다 먼저 죽겠다고 하자, 도적이 불쌍히 여겨 놓아 주었다. 또 큰 기근이 들었을 때 도적들이 조례(趙禮)를 잡아 장차 삶아 먹으려고 하였는데, 형인 조효(趙孝)가 스스로 결박하고 …
서울 동북쪽에는 수락산이 있다. 여기에 올라서서 삼각산을 바라보면 내가 서 있는 수락산이 조금 더 높은 것 같다. 그런데 삼각산에 올라가 수락산을 바라보면 수락산이 저 아래로 내려다보인다. 그렇다면 수락산과 삼각산 중에 어느 산이 더 높을까? 이 질문은 제가 한 게 아니라 조선 후…
여우란 놈은 늘 호랑이에게 아첨을 하였다. 호랑이는 그게 좋아 먹고 남은 것을 여우에게 주었고, 여우는 이게 탐나 더욱더 아첨을 하였다. 어느 날 여우가 말하였다. “호랑이님을 모두 산중의 왕이라고 부릅니다. 왕도 물론 높긴 하지만 왕 위에는 황제가 있어 이보다 높은 존재가 없습죠. …
중국에 이윤(伊尹)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원래는 천한 노비 출신인데 은(殷)나라 탕왕(湯王)에게 발탁돼 재상에 올랐으며 하(夏)나라의 폭군 걸왕(桀王)을 토벌하고 은나라가 천하를 잘 다스릴 수 있도록 했다는 분입니다. 그런데 처음에 탕왕은 이윤을 초빙하고서는, 이윤이 오자 그를 폭군…
요즈음 TV에서는 가족 구성원 간의 유대를 돈독히 하거나 멀어진 부모 자식 사이를 가깝게 만들어 주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만큼 현대 사회는 가족 간 소통이 몹시도 부족하다는 뜻이겠지요. 도강현(道康縣)에 정관일(鄭寬一)이란 효자가 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그 부모…
내가 남쪽으로 가는 길에 어떤 강을 건너는데 마침 우리 배와 나란히 건너가는 배가 있었다. 두 배는 크기도 같고 사공 수도 같았으며 타고 있는 사람이나 말의 수도 거의 비슷하였다. 그런데 조금 후 보니 저쪽 배는 나는 듯이 달려 벌써 저쪽 나루에 닿았는데 내가 탄 배는 머뭇거리며 앞으…
어떤 사람이 고양이를 사랑하여 서너 마리를 길렀다. 그중 한 마리는 낮이면 하루 종일 잠만 자다가 밤이 되면 일어나 사방을 두루 돌아다니며 쥐를 잡았다. 그렇지만 주인은 쥐 잡는 걸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 고양이를 잠만 자는 쓸모없는 놈이라고 여겼다(人未之見, 以爲無能也). 그런데…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의 ‘옛글에 비추다’를 연재합니다. 고전 속에서 지금 나아갈 길을 톺아봅니다. 상주(尙州)에 임(林)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미천하였지만 지극한 효성으로 어머니를 섬겼다. 어느 날 그의 아내가 제사를 지내려고 기름을 짜 사발에 담아서 방에 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