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난초 사랑은 역사가 매우 깊다. 중국인들은 이미 10세기경부터 관상을 위해 난초를 재배했다. 우리나라도 ‘삼국사기’에 난초를 재배한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다. 이에 비해 서양인들의 난초 열풍은 늦게 찾아왔다. 유럽 국가들은 19세기에 과테말라, 멕시코, 브라질, 마다가스카르 …
영국 유학 시절, 내게 겨울 날씨는 웬만한 정신력이 아니면 이겨내기 힘들 정도의 우울함이었다. 본격적인 우기가 늦가을부터 시작되는 것도 문제였지만 그 짧은 해를 견딜 수가 없었다. 오후 5시만 되면 이미 컴컴해진 축축한 거리에서 나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어서 집으로 가야 할 일만 남은…
가끔 잊고 있는 사실이 있다! 바로 지구에 살고 있는 생명체 중 인간의 출현은 정말이지 너무 최근의 일이라는 점이다. 지구의 역사 45억 년을 기준으로 봤을 때 인간의 선조인 유인원의 출현이 500만 년 전 즈음, 지금의 우리 모습을 한 종이 나타난 것은 20만 년 전, 그리고 인류가…
겨울이 오면 우리는 목감기, 코감기를 달고 산다. 나 역시도 짧은 아파트 생활을 할 때 축농증과 호흡기 질환에 시달리다 환경을 바꾸라는 의사의 권유로 단독주택 생활을 시작했다. 환경이 바뀌니 몸도 달라졌다. 천성적으로 호흡기가 약한 탓에 밀폐된 공간에서는 남들보다 먼저 숨쉬기의 곤란함…
문화를 뜻하는 영어는 ‘culture’다. 식물을 재배하는 기술을 뜻하는 말은 ‘cultivation’이고 농업을 뜻하는 ‘agriculture’는 땅을 뜻하는 ‘agri’와 ‘culture’가 합성돼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원형이 되는 ‘cult’에는 ‘돌보다’를 뜻하는 ‘ca…
최근 우주 개척 영화가 붐이다. 그 가운데 화성에 표류한 우주인이 식물을 키워 먹을거리를 해결해 마침내 구조된다는 공상과학영화도 있다. 이 우주인의 직업과 역할은 식물학자이자 정원사였다. 영화 속의 설정이긴 하지만 화성에 남겨진 사람이 정원사가 아니었다면 생존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를 일…
알래스카에 사는 이누이트(에스키모)들은 눈을 수십 가지로 분류해 부른다. 중요한 것을 부르는 이름이 하나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식물이 있다. 바로 벼다. 식물 자체일 때는 ‘벼’ 혹은 남부지방에서는 ‘나락’으로 부른다. 열매를 말려 먹을거리가 되면 ‘쌀’이…
나는 가을을 참 좋아한다. 영국에서 7년 넘게 유학생활을 하는 도중 유난히 가을이면 향수병이 심해졌다. 처음에는 한 해가 마무리되는 즈음이니 마음이 지쳐가고 일교차가 심해서 생긴 증상이 아닐까 했는데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영국은 가을이 되면 본격적인 우기로 접어들어 햇볕양이 크…
식물채집이라는 숙제를 했던 기억이 난다. 식물을 뿌리에서 꽃 혹은 씨앗까지 온전하게 채집해 책 사이에 넣어 사나흘 눌러놓으면 수분이 완전히 빠져나가 보관하기 좋은 상태가 되었다. 주변에서 보는 흔한 잡초에서 희귀해 보이는 식물까지 다양한 수종을 모아서 한 권의 스크랩북을 만들어내곤 했…
속초 집 마당이 요즘 정신없이 바쁘다. 가을이 되어 정원이 한산해질 만도 한데 상황은 전혀 다르다. 담장 안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있던 감나무 네 그루와 밤나무 한 그루가 연일 낙엽을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대로 두면 화단에 쌓여 좋은 거름이 되지 않느냐’고 묻지만 꼭 …
달이야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만 강원 속초로 주거지를 옮긴 뒤 유난히 달과 가까워졌다. 해도 동해에서 뜨지만 달도 제일 먼저 솟는 곳이 동해다. 대문이 서쪽에 난 까닭에 저녁 무렵 집으로 들어서다 보면 동쪽에 이제 막 솟아오른 달이 보인다. 어떤 날은 반쪽이고 어떤 날은 차오르고, 그리…
한 달 전쯤, 까만 고양이 한 마리가 네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그 새끼들이 제법 자라 마당을 차지하고 꽃밭을 뛰어다닌다. 그러다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나비를 처음 봤는지, 팔랑거리는 나비를 잡겠다고 안간힘을 쓴다. 청명한 날이 많아진 속초, 내가 살고 있는 집 마당의 9월이다. 나…
남쪽으로 가는 길은 뭔가 풍성함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마음이 늘 설렌다. 9월의 첫 주, 지인을 만나려 남도의 끝자락 남해로 발걸음을 옮겼다. 종종 찾아가던 길이지만 9월의 남도 여행은 처음이 아니었을까? 남해라고 해도 화려한 여름 꽃이 지나간 정원은 다소 쓸쓸해 보인다. 그러나 …
태풍 고니가 동해안을 지나가는 동안 내가 사는 속초는 하루 종일 비가 오고 거센 바람이 불었다. 여름 내내 열어 두었던 창문을 닫아 놓으니 비바람 소리는 잦아드는데 마치 무서운 영화를 소리 죽여 놓고 보는 것처럼 묘하게 안심되고, 묘하게 두려웠다. 가혹한 날씨가 찾아오면 사람들도 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