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릉조―70년 추석에 ―천상병(1930∼1993)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 생각느니,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
어머니 ―오세영(1942∼ ) 나의 일곱 살 적 어머니는 하얀 목련꽃이셨다. 눈부신 봄 한낮 적막하게 빈 집을 지키는, 나의 열네 살 적 어머니는 연분홍 봉선화 꽃이셨다. 저무는 여름 하오 울 밑에서 눈물을 적시는, 나의 스물한 살 적 어머니는 노오란 국화꽃이셨다. 어두운 가을…
아버지의 마음 ―김현승 (1913∼1975)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
소녀상 ―송영택(1933∼) 이 밤은 나뭇잎이 지는 밤이다 생각할수록 다가오는 소리는 네가 오는 소리다 언덕길을 내려오는 소리다 지금은 울어서는 안 된다 다시 가만히 어머니를 생각할 때다 별이 나를 내려다보듯 내가 별을 마주서면 잎이 진다 나뭇잎이 진다 멀리에서 또 가…
꽃씨와 도둑 ―피천득(1910∼2007) 마당에 꽃이 많이 피었구나 방에는 책들만 있구나 가을에 와서 꽃씨나 가져가야지 피천득은 수필가로 유명하다. 그의 수필집 제목은 ‘인연’인데, 이 책은 수필계의 고전이자 스테디셀러로 알려져 있다. 왜 그렇게 많이들 읽었을까.…
별을 보며 ―이성선(1941∼2001)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별아, 어찌하랴. 이 세상 무엇을 쳐다보리. 흔들리며 흔들리며 걸어가던 거리 엉망으로 술에 취해 쓰러지던 골목에서 …
《 나민애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가 매주 금요일 ‘시가 깃든 삶’으로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나 교수는 따뜻한 감성으로, 잘난 시가 아니라 좋은 시를 찾아다니는 여성 평론가입니다. 그가 소개하는 한 편의 시는 일상에 지친 우리의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 주는 위안이 되어 줄 것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