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복더위가 절정으로 치닫는 8월 5일이었다. 열기 후끈한 서울의 초저녁에 정체 모를 악취가 진동했다. 서울의 낮 기온은 36.7도까지 올라 10년 이래 최고를 기록한 날이었다. 1929년이었다. 10년 전의 최고기온이란 1919년 8월 1일에 관측된 37.5도를 말한다. 3·1운…
미국 공화당의 전당대회와 후보 지명 수락 연설이 지난주 세계를 달구었다. 급부상한 도널드 트럼프에게 빠져드는 대중심리와 거부감이 공존하는 풍경이었다. 80년 전 히틀러의 독일을 필두로 파시즘이 유럽 대륙을 휩쓸던 그때 미국의 정신은 지금보다 건강해 보였다. 그 1936년 여름에 주지사…
한국에서 괴담의 역사는 유구하다. 낯선 것과 대면할 때 괴담은 극성한다. 불안과 공포의 반영이다. 현실을 정면 돌파할 힘이 없을 때 번식한다. 100여 년 전부터만 보아도 괴담은 도처에 무성하다. 근대로 접어든 한국인이 가장 충격적으로 맞닥뜨린 것 중 하나가 전차였다. ‘번갯불을…
120년 전 이맘때 조선의 국왕과 정부는 러시아로 출장 떠난 사절단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국왕의 신변 안전 문제가 당면 과제였다. 체류 기간이 만 5개월을 넘어서는 서울 주재 러시아공사관에서 나와 거처를 옮기게 될 경우에 필요할 경비병력을 러시아에 요청했기 때문이다. …
유럽에 금이 가고 있다. 늘 화목하게 지내오진 않았지만 20여 년간의 자발적 공동체 경험이 쌓여 가는 마당에 돌출한 균열이어서 단절감이 커 보인다. 균열이 파열로 갈까 하는 걱정도 짙게 깔려 있다. 파열은 옛날이라면 대개 전쟁이다. 유럽이 크게 쪼개진 20세기 초반의 대표적 사태…
얼마 전 신공항을 어디다 두느냐로 큰 분란이 있었지만, 90여 년 전에는 도청을 어디에 두느냐로 영남에서 큰 갈등을 빚은 일이 있다. 그때는 부산이냐, 진주냐로 충돌했다. 부산이 경남의 한 도시이던 시절 얘기다. ‘경상남도 도청을 진주에서 부산으로 옮기는 일로 진주 사람들은 극…
‘황해도와 평안남도 연안에 출몰하는 중국인 어업자들을 막아내고…’(동아일보 1921년 10월 18일자) 서해바다의 영해를 침범하여 불법 조업을 일삼는 중국 어선들을 엄중 단속하겠다는 조선총독부 당국의 발표를 전하는 95년 전 신문기사의 한 구절이다. 중국 어선의 노략질은 조선 수…
‘미래의 물결, 감동의 기술.’ 어제까지 부산에서 열린 국제모터쇼가 내건 주제 문구다. 국내외 자동차 및 부품업체들이 한데 모여 신상품을 선보이고 신기술을 자랑하는 자리였다. ‘자동차 산업의 꽃’이라 불리는 이 행사에서 생산자들은 사업에 새 활로를 찾고, 소비자들은 생활에 새 활력…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지난주 일본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71년 전 미국이 투하한 핵무기의 희생자를 추도했다. 앞서 일본으로 가는 길에는 베트남에 들렀다. 세계대전을 제외하고 20세기의 가장 치열한 전쟁의 하나로 기록되는 베트남전쟁이 끝난 지 41년째다. 1…
한국 소설이 번역되어 외국에서 상을 받고, 다른 언어권의 독자를 활발하게 만나는 세상이 차츰 열리고 있다. 이 같은 추세는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불과 수년 전까지도 한국의 소설은 엄밀히 말하자면 국내용이었다. 더욱 거슬러 현대 한국 문학의 기원에 해당하는 한 세기 전으로 올라가면…
메르스라는 생소한 이름의 전염병이 국내에서 정체를 드러낸 지 1년이 됐다. 그 낯선 괴질(怪疾)은 심대한 인적 물적 피해를 던지는 한편으로 이 사회가 어떠한 만성 고질(痼疾) 상태에 있는가를 여실히 드러내주었다. 그것은 병균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문제였다. 그 점에서 옛날과 지금…
1925년 5월 1일. 그날은 노동절이자 어린이날이었다. 일체의 사회운동을 강력 단속하는 치안유지법이 막 공포된 살벌한 시절이어서 노동자들의 가두 행진은 없었다. 다만 어린이들의 행렬이 그를 대신했다. 광복 이후 5월 5일로 변경되기 전까지 어린이날은 한동안 5월 1일이었다. 이…
‘메이데이 기념강연회가 5월 1일 오후 8시 종로 YMCA회관에서 열렸다. 2천 명이 넘는 군중이 모여들어 회장 밖까지 늘어섰다.’ 한국 땅에 처음 메이데이가 상륙하여 노동제일(勞動際日)이라는 이름으로 행사를 가진 1923년 서울의 봄이었다. 메이데이의 역사와 그 의의에 대해 연사…
‘동부 이탈리아에 일어난 지진은 길이 300리 폭 150리에 이르는 다수의 도시와 촌락을 파괴했고 사망자 1천5백 명, 부상자 1만여 명….’ 동아일보 등 민간신문이 첫선을 보인 지 반년이 지난 1920년의 초가을, 독자들은 해외의 지진에 관한 모처럼의 생생한 소식을 접했다. 한국…
벚꽃이다 선거다 하는 사이 프로야구가 개막해 벌써 세 번째 주말을 지냈다. 야구 팬들에게는 벚꽃보다 설레고 선거보다 흥분되는 4월이 아닐 수 없다. 벚꽃과 선거는 일시적이고 단발적이지만 프로야구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이다. 이보다 더한 즐거움을 주는 것이 달리 있겠냐고 야구 팬들은 확신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