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고고학 발굴에서 다시는 되풀이돼선 안 될 역사적 과오였다.” 지건길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74·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자서전 ‘고고학과 박물관 그리고 나’(학연문화사)에서 무령왕릉 발굴을 회고하며 쓴 글이다. 그는 1971년 무령왕릉 발굴에 참여한 당사자다. 고고학자…
《지난달 31일 충북 오송역에서 차로 30분. 청주 북서쪽 외곽에 이르자 야트막한 봉분들이 이어진 능선이 보였다. 동네 뒷산 같은 아늑한 분위기랄까. 왕릉급인 ‘고령 지산동 고분군’(본 시리즈 20회) 같은 웅장한 스케일은 아니다. 국내 최초로 백제 재갈과 발걸이가 출토돼 고고학계로부…
“기술은 시간을 절대 추월할 수 없어요. 기술이란 때가 되어야 나타나는 겁니다.” ‘구루(Guru)’의 말은 짧고 단정적이지만 그 속에 힘이 있다. 단순한 교과서 지식이 아니라 수십 년 세월 자신이 경험한 산지식이 응축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5일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한 경…
야트막한 구릉 정상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봉긋하게 솟아오른 거대한 봉분들이 지평선까지 죽 이어져 있다. 그 뒤로 펑퍼짐한 능선에 자리 잡은 성산산성(城山山城)이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다. 1400여 년 전 아라가야를 점령한 신라군의 위세가 멀리서도 느껴진다. 3일 찾은 경남 함안…
경주 도심 남천(南川)을 건너 남산(南山) 방향으로 차를 몰자 너른 들판이 펼쳐졌다. 물 댄 논 사이로 황구가 어슬렁거리는 전형적인 농촌마을 탑동이다. 그런데 마을 입구를 지키는 육중한 조선시대 기와 건물이 범상치 않은 포스를 내뿜는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한 6부 촌장(…
발아래 금강은 유유히 흐르는데 백제 700년 역사는 온데간데없었다. 지난달 31일 충남 공주시 공산성(公山城) 꼭대기 정자(亭子)에 오르자, 공북루(拱北樓)로 뻗어 내린 성벽 옆으로 금강이 거대한 물줄기를 이루고 있었다. 서기 660년 이곳에서 당나라와 최후 결전을 벌인 의자왕도 …
19일 경남 합천군 옥전서원(玉田書院) 옆 야산에 들어서자 사람 키를 넘는 거대한 무덤들이 나타났다. 능선을 따라 위아래로 길게 늘어선 20여 기의 봉분은 멀리서 보면 마치 낙타 혹 같다. ‘어딘가 눈에 익은 풍경인데….’ 지난 시리즈에서 취재한 발굴 유적 32곳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여긴 사방 어디서도 전체를 볼 수 없는 무한(無限)의 공간이오.” 8일 경북 경주시 ‘동궁(東宮)과 월지(月池·안압지)’를 함께 찾은 윤근일 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70)이 건넨 선문답 같은 말이다. 과연 그러했다. 천년왕성 월성(月城) 동문 터와 맞보고 있는 월지 남쪽에 들어…
빼곡히 밀집된 주택가 한복판 풀 떼를 입은 거대한 구릉이 나타났다. 거북이 등처럼 야트막한 언덕들 사이로 직사각형 모양의 무덤들이 펼쳐져 있다. 정상부에 있는 대형 무덤은 길이가 7, 8m에 이른다. 21일 답사한 부산 복천동 고분군은 김해 대성동 고분과 더불어 금관가야 지배층이 묻힌…
가파른 경사를 헐떡이며 15분쯤 올라갔을까. 약 3∼5m 높이의 흙벽이 사방을 두른 넓은 풀밭이 펼쳐졌다. 고원에 자리 잡은 아늑한 분지를 연상시켰다. 풀때 입은 흙벽을 자세히 살펴보니 온통 돌무더기. 자연석이 아닌 축성을 위해 인위적으로 다듬은 돌들이었다. 10일 박종익 국립중원…
《 한적한 어항(漁港), 배를 수리하는 어부들이 보인다. 8000여 년 전에도 고래와 물고기, 조개를 잡아 올린 어부들이 여기 있었다. 시대를 초월한 데자뷔인가. 27일 부산 동삼동 패총(貝塚·조개무지) 유적에서니 코앞에 너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선사(先史)인들이 먹고 버린 조개껍…
날개를 활짝 펴고 비상하는 한 마리 ‘금빛 봉황’을 보았다. 6일 국립공주박물관 전시실에서 본 수촌리 고분 출토 금동관은 신라 금관과 또 다른 아취를 담고 있었다. 온몸에 달개를 매단 세 줄기 입식(立飾)은 정면에서 보면 꼿꼿이 세운 봉황 머리와 양옆으로 활짝 편 날개를 연상시켰다. …
경주 낭산(狼山)은 예부터 신들이 노닌다는 신유림(神遊林)이 있던 상서로운 곳이다. 20일 문무왕 화장터로 알려진 능지탑을 거쳐 선덕왕릉에 다다르자, 낭산 아래로 울창한 소나무 숲이 펼쳐졌다. 숲길을 10분쯤 내려갔을까. 철길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폐사지 한 곳이 보였다. 통일신라시…
1일 충남 부여군 왕흥사 터. 백마강 너머로 백제 멸망의 비극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낙화암이 멀리 보였다. 백제 위덕왕은 자신이 지은 화려한 왕실 사찰을 드나들며 보았을 낙화암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이나 했을까. 도도히 흐르는 저 강을 사이에 두고 백제의 흥망성쇠가 오롯이 펼쳐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