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 이민자 작가가 쓴 자전소설을 읽었다. 시대적 배경은 6·25전쟁 전후다. 주인공은 어린시절 자신이 여자로 태어나서 어머니가 불행해졌다고 생각했다. 그걸 핑계로 아빠가 첩을 데리고 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오랫동안 자신을 책망했다. 이 부분을 보면서…
20일은 내가 한국에 온 지 25년째 되는 날이었다. 믿기 어렵다. 처음엔 이렇게 오래 있을 생각이 아니었다. 그 사이 5년 정도 해외에 체류했으니 20년간 한국에 머문 셈이다. 원래 계획은 한국에서 영어를 1년 정도 가르친 뒤 독일어 전공을 살려 독일 유학을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
서울 어디를 가더라도 똑같아 보인다는 생각이 이따금 들 때가 있다. 출퇴근하면서 매일 같은 길과 고층건물을 보게 된다. 평일에 마주치는 사람들도 거의 비슷비슷하다. 도시의 단조로움을 참다못해 염증이 나면 서울 속에서 다양성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있다. 그곳은 여러 이름으로 불린…
5월은 산책하기에 알맞은 계절이다. 주말에는 아내와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 주말뿐만 아니라 사실은 미세먼지만 아니라면 점심시간에라도 일상에서 빠져나와 잠시 바람 쐬는 것이 언제나 좋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점심시간에 책상에서 간단하게 뭘 먹고 신문을 읽거나, 인터넷을 보거나, 낮…
3주 전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다. 우리 직장에서 밀접 접촉자나 집단감염 사례가 발생했기 때문은 아니다. 나는 최근 해외를 방문한 것도 아니며, 감염자와 동선을 공유한 적도 없다. 오로지 내 여권이 대한민국 여권이 아니라서 받았다. 지난달 먼저 경기도에서 모든 외국인 노동자 대상 의무…
1일 저녁 내린 비가 눈으로 변했다. 눈이 오는 건 더 이상 기대하지 않고 있다가 내리는 눈을 보며 떠나고 있는 겨울을 생각하게 됐다. 이 눈이 이번 겨울의 최후일까? 지난해 겨울은 참 추웠다. 보도에 따르면 한강이 2년 만에 얼어붙을 정도였다. 옛날 사진을 보면 사람들이 겨울에 한강…
아마추어 언어학자로서 나는 항상 언어가 귀에 어떤 소리로 들려오는지에 관심을 쏟는다. 어릴 때 네덜란드에서 이민을 왔던 호주에서 영어를 배울 때 쉽게 헷갈리는 단어, 귀에 들리는 음성이 기분 좋은 단어, 뜻은 좋지만 소리가 별로 즐겁게 들리지 않는 단어에 특히 매료됐다. 한국어를 배…
올해 크리스마스는 다소 우울하다. 한국만 그런 게 아니라 전 세계가 그렇다. 몇 년 전 관광회사에서 일할 때 외국인 관광객들을 인솔해 ‘크리스마스 걷기 투어’를 한 적이 있다. 청계천 입구부터 롯데백화점 앞, 신세계백화점 앞, 남대문시장 등불을 보고 힐튼호텔 로비에 있는 커다란 크리…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제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곳은 출입국관리사무소다. 한국어에 능숙해도 가기 싫은 곳이니 다 큰 어른이라도 ‘마트용 한국어’밖에 모르는 처지라면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가야 한다는 소리에 덜덜 떨고 눈물이 찔끔 날 정도다. 조금 과장은 했지만 그렇다고 많이 과장한 건 아니…
요즘 관광지나 번화가에 나가면 셀카봉으로 스마트폰을 들고 걸어가는 사람을 자주 본다. 심지어 머리에 카메라를 거는 사람도 있다. 이 사람들이 유튜브족(族)에 속한다. 최근 읽은 신문기사에는 직장인 4명 중 1명 이상이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라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들 중에 4…
나는 한국 생활 첫 3년간 4곳의 다른 집에서 살았고 호주로 돌아간 것을 포함해 5번 이사를 해봤다. 호주에서 다시 한국으로 이민 온 뒤 16년간 다시 4번의 이사를 했다. 지난주가 바로 그 4번째 이사이면서 11년 만의 이사였다. 친구들 중에는 2년마다 이사를 다니는 사람들이 꽤…
한국에 오기 전에 한식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호주 멜버른에서 자라는 동안 한국인 공동체가 그다지 크지 않았던 데다 많지 않은 한국 식당들의 주 고객은 한인들이었다. 지금은 시드니뿐만 아니라 멜버른에까지 한식당이 많을 뿐 아니라 ‘치맥’이 인기를 끌고 있다. 26년 전 멜버른…
‘이 세상에서 죽음과 세금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처럼 죽음과 세금은 확실할 뿐 아니라 누구나 두려워할 만한 일이 분명하다. 호주에서는 매년 10월 31일까지 소득을 신고한다. 나는 세무 회계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 1999년 말부터 2004년 초까지 호주에…
내가 한국어를 처음 배울 때 ‘강아지’는 ‘개의 새끼’라는 정의로 처음 접했다. 이 단어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그렇게 쓰여 있다. 여담으로 다른 정의도 있다. ‘주로 어린 자식이나 손주를 귀엽게 이르는 말’, ‘자식을 속되게 이르는 말’, 그리고 ‘죄수들의 은어로, 담배를 이르…
1월 말과 2월 중순 외국 출장을 다녀왔다. 먼저 1월 말에는 미국에 갔다. 그때 한국에는 이미 몇 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있었다. 미국도 비슷한 시기에 코로나가 발생했다는데, 내가 방문한 워싱턴과 뉴욕은 그 당시 조용했다. 나는 한국에서의 습관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비행기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