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 전후로 미국 언론은 대학의 졸업 축사에 주목한다. 저명인사들이 졸업생과 사회를 향해 보내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어서다. ‘늘 갈망하라, 늘 우직하라.’ 2005년 스탠퍼드대에서 스티브 잡스가 했던 축사는 명연설로 회자된다. 올해는 이례적이다. 명망가의 대학 축사보다 지방…
평일 낮 서울의 강북을 오가는 버스에 타보면 고령화사회를 실감하게 된다. 경동시장을 거쳐 서부 서울의 끝으로 달리는 노선은 주렁주렁 짐 보따리를 양손에 거머쥔 어르신들로 붐빈다. 노약자 좌석에 뒷좌석도 얼추 채워지면 백발 노년의 자리 쟁탈전이 벌어진다. 너도 노인 나도 노인, 양보받을…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오랫동안 외국을 떠돌던 큰아들이 집으로 돌아온다. 여동생은 살갑게 맞이하나 남동생은 착잡하다. 5년 전 어머니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던 형에 반가움과 반감이 엇갈린다. 아버지를 보내고 이들은 유산으로 포도주 양조장을 물려받는다. 엄청난 상속세를 감당하려면 대대…
가까이 지낸 이의 남편이 지난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문상 간 나에게 지인은 담담히 지난날을 들려줬다. 손쓸 방법이 없다는 의사의 선고를 받은 날부터 작별할 때까지 46일간 대소변을 받는 상황에서 간병인을 한 번도 부르지 않았단다. 그는 물론이고 결혼한 두 아들도 직장에서 퇴근하는 …
미국 의회 청문회에 양복 차림으로 등장한 페이스북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를 보면서, 왠지 고유한 아우라가 사라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늘 입던 회색 티셔츠와 청바지에서 풍기던 자유로운 영혼의 이미지를 찾을 수 없었다. 정보기술(IT) 거물이 아닌, 그저 1984…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수시로 고위직을 갈아 치운다. 자기 스스로 임명했던 각료도 참모도 줄줄이 쫓아냈다. 마치 2인 3각 경기처럼 웬만해서는 대통령과 거의 임기를 함께하며 국제정치를 주무른다는 국무장관도 그 조기 퇴임 행렬에 끼었다. 렉스 틸러슨 장관은 1년여 만에 트위터로 …
여동생은 4세 때 책을 읽었는데 그는 8세가 돼서야 글을 터득했다. 학창시절에는 게으른 학생이었고 성적은 늘 반에서 중간 이하였다. 어찌어찌 명문대 입학은 했는데 행운은 거기까지. 21세에 중병에 걸려 ‘길어야 2, 3년’이란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 인생역전은 그때부터. “왜 내게 이…
세종대로 사거리 건널목에서 무심코 건너편을 바라보는데 가슴이 환해진다. ‘아이들의 팽팽한 마음/튀어오르는 몸/그 샘솟는 힘은/어디서 오는 것이냐’(김광규 시인의 ‘오래된 물음’). 겨울 내내 눈에 익었던 교보문고 글판이 새 단장을 했다. 어느새 봄인가. 한 주일 사이에 다른 세상이다.…
우리는 음력설을 주로 쇠지만 일본은 신정 연휴를 보낸다. 메이지 시대의 대변혁에서 음력을 버리고 명절도 양력으로 바꾼 이후부터다. 일본 근대화의 서막이라 할 메이지 유신이 올해로 150년을 맞는다. 그래서 이번 설 연휴는 700쪽이 넘는 책 ‘막말(幕末)의 풍운아 에노모토 다케아키와 …
똑똑하다 vs 열심히 한다, 둘 중 어느 쪽이 바람직한 칭찬일까. 미국 교육심리학자 캐럴 드웩 교수 팀의 초등학생 대상 연구에 따르면, 후자 쪽이다. 성과나 능력보다 성품과 노력을 언급할 때 칭찬의 효과가 크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지적 능력을 칭찬받은 아이는 계속해서 머리 좋다는 얘기…
얼마 전 서울지하철 3호선에서 겪은 일이다. 마침 일요일 오전이라 전동차는 한산했다. 내릴 역이 다가오는가 싶은데 저만치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다가왔다. “이거 좀 사줘!” “아니면 그냥 1000원도 500원도 좋고.” 짧은 백발의 할머니가 장바구니 속 멸치를 가리키며 며느리뻘보…
올해 처음 천만 고지를 밟은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의 메시지는 단순명쾌하다. ‘착한 끝은 있어도 악한 끝은 없다.’ 어려서부터 어른들에게 귀에 못이 박이게 듣던 바로 그 단골 멘트 아니겠는가. 오래도록 살아남은 ‘권선징악’의 교훈. 어느덧 막장 연속극의 마무리 공식이 됐으나 이 …
한번 내뱉은 말, 쏘아버린 화살, 저버린 기회 그리고 흘러간 세월….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살면서 터득한 ‘돌아오지 않는 것 4가지’라고 한다. 어느덧 세밑. 내세울 것도 없고 손에 쥐는 결과물도 없이 한 해가 갔다는 자책과 아쉬움이 이맘때면 어김없이 밀려온다. 지난주 국내외를 떠들…
놀라운 광경이다. 스파이더맨처럼 건물 벽에 유유히 서있는 아이, 창틀에 아슬아슬 매달린 할머니…. 실은, 눈속임이다. 예술의 이름으로 설정된 현혹의 과정. 최근 일본 도쿄에서 개막된 아르헨티나 작가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seeing and believing’전에서 만난 ‘빌딩’이란 작…
영화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어둠의 시간)’가 지난주 북미에서 개봉된 뒤 주연배우 게리 올드먼은 내년 오스카상 후보감이란 호평을 받았다. 영국의 전설적 총리 윈스턴 처칠을 다룬 이 영화는 제목도 그의 명연설에서 따왔다. 믿었던 프랑스마저 나치에 무너지고 유럽에서 외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