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세상을 밝게 보려는 작가들이 있다. 심지어 다른 작가의 말을 오독해서라도 밝은 쪽으로 관심을 돌리려는 작가들이 있다. 2021년 세상을 떠난 폴란드 시인 아담 자가예프스키가 그러했다. 그는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을 오독한다. 구체적으로 사르트르의 희곡 ‘닫힌 방’ 말미에 나오는…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딸을 놓아주지 않는다. 오십대 중반 이른 나이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뿌연 혀, 자주색 욕창, 늘어진 머리, 흐릿한 눈. 좋은 기억도 많은데 안 좋은 기억만 자꾸 떠오르니 딸은 고통스럽다. 급기야 비싼 돈을 들여 뉴욕에서 정신과 치료까지 받지만 소용이 …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암울하고 절망적이어서 더욱 빛을 발하는 생각들이 있다. 양명학 시조인 명나라 시대 철학자 왕수인, 그의 생각이 그러하다. 특히 인간 본성에 대한 그의 절대적인 신뢰는 눈이 부실 정도다. 왕수인은 인간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물에 빠지는…
어머니는 딸이 안기려고 하면 몸이 굳었다. 딸은 어머니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 그 딸이 결혼해 딸을 낳았다. 그는 자기 딸에게 똑같이 했다. 딸이 안기려고 하면 자기도 모르게 몸이 굳었다. 그리고 욕하고 때리면서 딸을 모질게 키웠다. 너무 슬픈 대물림이었다.…
타인을 이해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우리와의 공유점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종교가 달라도 모두가 인간성으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갑자기 어떤 무덤 앞에 엎드려 소리 없이 울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
시를 읽는 것은 때로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는 경험이다. 김혜순 시인의 ‘KAL’은 그러한 경험을 몰고 오는 시다. 흩어져 살아온 형제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버지가 행불자가 되고/엄마가 시집가자/큰딸은 부산에/아들은 프랑스에/작은딸은 미국에 살았다.” 그래서 삼중으로 통역해줘야 의…
“인간은 국가 안에 사는 것이 아니라 언어 안에서 살아간다.” 카탈루냐 작가 자우메 카브레의 소설 ‘나는 고백한다’에 나오는 신부의 말이다. 무슨 의미일까. 바르셀로나 축구팀으로 유명한 카탈루냐 지역은 스페인의 일부지만 말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다. 그런데 프란시스코 프랑코 독재정권은 …
어떤 사람이 미켈란젤로에게 피에타 상이나 다비드 상 같은 위대한 조각품을 어떻게 만들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답변은 이랬다. “나는 대리석 안에 조각상이 있다고 상상하고 필요 없는 부분을 깎아내어 원래 존재하던 것을 꺼내 주었을 뿐입니다.” 세계적인 정신의학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와…
가해자를 향해서도 연민의 감정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데즈먼드 투투 성공회 주교가 그러한 경우다. 그의 연민은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가 나이지리아를 처음 방문했을 때다. 그는 나이지리아인들이 조종하는 비행기를 타고 이동…
깊은 슬픔을 깊은 사유로 바꿔놓는 사람들이 있다. 덴마크 영화감독 리스베트 선희 엥겔스토프도 그런 사람이다. 그는 덴마크 양부모 밑에서 자란 한국인 입양아다. 그가 어머니를 찾으려고 한국에 왔을 때 어떤 미혼모가 물었다. “입양아로 사는 게 행복한가요?” 가혹하고 무례한 질문이었다. …
작품이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있다. 황선미 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도 그런 경우에 속한다. 작가의 의도는 ‘뭔가를 하고 싶었지만 그걸 이루지 못한 사람이 자신의 인생에 대해 고민해보고 노력해보고 최선을 다했으나 다 갖지 못하는’ 내용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는 …
스토리도 일종의 힘겨루기를 한다. 그리고 이기는 쪽이 주도권을 쥔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팔레스타인과 관련해 주로 한쪽 얘기만 우리의 귀에 들리는 것은 그래서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역사의 희생자임을 누누이 강조한다. 나치의 손에 수백만 명이 죽었으니 맞는 소리다. 그들의 수난에 관…
열네 살짜리 소녀가 학교에 간 첫날이었다. 선생님을 제외하면 누구도 소녀에게 말을 붙이지 않았다. 점심시간이었다. 소녀는 혼자서 도시락을 먹고 교실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난로 옆에 있는 물통의 물을 마시기 위해서였다. 국자로 물을 떠서 마시고 난 뒤에 일곱 살이 채 되지 않은 아이가 …
어떤 아들이 아버지를 버리고 도망쳤다. 세상을 떠돌며 날품팔이로 살았다. 어느 날 그는 아버지가 사는 곳을 지나치게 되었다. 그는 엄청난 부자가 된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했다. 아버지는 달랐다. 50년이 지났어도 아들을 알아보았다.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던 거다. 그는 너무 기뻐서 사람…
아버지는 암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시인은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고통스러웠다. ‘어두운 밤 속으로 너무 순하게 들어가지 마세요’라는 제목의 시는 그러한 고통의 산물이다. 시인의 이름은 딜런 토머스. 19행으로 이뤄진 정형시는 “어두운 밤 속으로 너무 순하게 들어가지 마세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