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소리로 절규하며 우는 것은 엄청난 자산입니다.” 시인은 절규와 울음을 자산이라고 하더니 이렇게 덧붙인다. “불평하세요!/고통스러운 상황에서 가만히 있지 마세요./슬퍼하세요.” 고통스러우면 불평하고, 슬프면 슬퍼하라는 조언이다. 시인은 인간을 아이에, 신을 유모에 빗댄다. “유모가…
연민이 때로는 사랑으로 이어진다. 리하르트 바그너의 기념비적인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연민에서 시작된 사랑의 이야기다. 트리스탄은 콘월(잉글랜드) 기사이고 이졸데는 아일랜드 공주다. 앙숙인 두 나라가 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트리스탄이 아일랜드 기사 모롤트를 죽이게 된다. 그도 …
나이지리아 극작가 월레 소잉카는 세상이 몰랐으면 싶은 아프리카의 의식(儀式)이 하나 있다고 말한다. 마음을 정화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이유에서다. 인간을 사냥해 사고팔던 시절에 있었던 의식이다. 베냉공화국의 우이다에는 ‘망각의 나무’라는 게 있었다. 노예들은 배에 태…
사람은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는 실존적 상황이면 작은 것에 집착하게 된다.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의 소설 ‘작은 것들의 신’에는 그러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남자는 불가촉천민이고 여자는 가촉민이다. 불가촉천민은 오염된 존재다. 그래서 가촉민이 만지는 것을 만질 수도 없고, 말할 때…
“연민이 단 한 번이라도/결승선에 제일 먼저 도착한 적이 있었던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는 ‘증오’라는 이례적인 제목의 시에서 이렇게 묻는다. 시인은 인간이 가진 감정들이 일종의 육상경기를 한다고 상상한다. 그런데 사랑, 박애, 증오, 연민, 의심, 정…
지난주 월요일(10월 30일), 나주 역사공원에서는 일본인들이 기금을 모아 만들어진 “동학농민군 희생자를 기리는 사죄비” 제막식이 있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일본인 대표가 사죄문을 읽었다. 그는 이노우에 가쓰오 홋카이도대 명예교수였다. 동학농민군에 대한 그의 관심은 1995년 홋카이도…
팔레스타인 작가 아디니아 시블리의 ‘사소한 일’에는 거창한 것보다 사소한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온다. 그는 사소한 것에만 관심이 있다. 어느 날, 그는 반세기도 더 전인 1949년 8월 13일에 있었던 일에 관한 신문 기사를 읽게 된다. 네게브 사막에 주둔하던 이스라엘…
편견과 불의로 가득한 세상처럼 보여도 어딘가에는 믿음이 있고 선의가 있다. 지금 상영 중인 하줄리-이성민 감독의 ‘프리 철수 리’(이철수를 석방하라)는 그러한 믿음과 선의를 보여주는 기록영화다. 1973년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중국인 갱단 간부가 총에 맞아 죽은 사건이 발생했다.…
좀처럼 곁을 내어 주지 않던 순무가 그를 향해 눈을 서서히 깜박인다. “간접적이지만 확실한 호의의 표시”다. 그가 입원실 유리의 숨구멍으로 검지를 밀어 넣자, 순무가 다가오더니 냄새를 맡고 코를 댄다. 순무는 그가 구출한 길고양이다. 그냥 두면 곧 죽게 되었을 것이다. 그는 몸짓과 눈…
1960년대 미국 대중가수였던 필 옥스가 부른 ‘행운이 없었다면’이라는 노래가 있다. 존 바에즈가 불러서 더욱 유명해진 노래는 3절까지는 죄수, 부랑자, 술주정뱅이를 차례로 열거하며 “행운이 없었다면 당신이나 나도 그럴 것입니다”라는 후렴구로 끝난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우리와는 상…
“축복이나 은총은 강제로 요구한다고 해서 오는 것이 아니다. 자발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신경의학자 올리버 색스가 음악의 치유 효과를 설명하면서 했던 말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었다.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였다. 그는 정상적으로 보이려고 노력했…
‘켄터키 옛집’은 미국 작곡가 스티븐 포스터가 19세기 중반에 작곡한,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래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에 음악가 박태원이 번안하여 소개한 후 같은 작곡가의 ‘오, 수재너’ ‘스와니강’ ‘금발의 제니’와 함께 대중적인 곡이 되었다. 그런데 ‘켄터키 옛집’은 지금 시점…
서양 화가들은 언제부턴가 성스러운 대상을 재현해서는 안 된다는 금기를 조금씩 깨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작가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의 ‘의심하는 성 토마스’(사진)도 그러한 사실을 환기하는 특별한 그림 중 하나다. 그의 그림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토…
태종 12년, 즉 1412년 5월이었다. 의정부에서는 한 편의 시 때문에 난리가 났다. 그것은 새로 시작한 조선 왕조에 대한 부러움 섞인 찬사에서 시작하여 고려 왕조에 대한 안타까운 애도로 끝나는 시였다. “천년의 새 도읍이 한강 저편에 있어/충성스러운 신하들이 밝은 임금을 보좌하누나…
13세기 페르시아 시인 잘랄루딘 루미는 생전에 성인으로 추앙받은 이슬람 신학자이자 수피 신비주의자였다. 그는 지금으로 치자면 튀르키예의 코냐에 정착해 살았는데 제자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구르주 카툰도 그의 제자였다. 어느 날 그녀는 장군인 남편의 근무지가 바뀌어 코냐를 떠나 아나톨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