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버림받고 짓밟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 ‘고려인’이라 통용되는 우리 조상들도 그런 사람들이었다. 시집 ‘강제이주열차’를 펴낸 이동순 시인은 그들을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기꺼이 빌려준다. 1937년 8월 말에 내려진 스탈린의 명령 하나로 연해주에서 우즈베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예술은 때로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도 그렇다. 불편함은 제목에서부터 시작된다. 숙주에 기생하면서 영양분을 빨아먹는 기생충은 은유적으로 쓰이면 다른 사람에게 기생해 사는 사람을 나타낸다. 스토리는 이 불편한 제목이 암시하고 환기…
바이러스나 병원균 때문에 위기에 처할 때 우리가 떠올리는 소설이 있다. 알제리 태생의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가 그 소설이다. 거기에 묘사된 공포와 히스테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것들과 거의 판박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베르나…
애지중지하던 고양이가 사라졌다고 결혼을 취소할 수 있을까. 조남주 작가의 단편소설 ‘테라스가 있는 집’에서는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 두 사람은 결혼하려고 청첩장까지 만들어 놓았다. 고양이를 키우는 여자는 남자에게 테라스가 있는 집을 신혼집으로 계약하자고 제안한다. 빗방울이 창문에 …
부처가 살았던 몇천 년 전에 니이티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제분인부(除糞人夫), 즉 남의 집 변소를 푸며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었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밖에서 용변을 해결했고 부자들만 옥외변소를 갖고 있었다. 인분을 치워주고 살아가는 사람이었으니 니이티는 천민 중의…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작품이 특정한 말이나 표현 때문에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주면 어떻게 될까.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이러한 질문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백인들은 이 소설을 ‘미국 근대문학의 출발점’으로 보고 트웨인을 ‘미국 문학의 아버지’로 받든다. 하지만 그러한 …
예술가는 슬픔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한다. 아르헨티나 설치미술가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최근작은 그러한 속성을 멋지게 보여준다. 그는 불국사 석가탑에 얽힌 슬픈 전설을 우연히 들었지만 그냥 넘기지 않았다. 북서울미술관에 전시된 ‘탑의 그림자’가 그 결과다. 아사달과 아사녀의 전설은 누가…
“아름다워.”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던 할머니는 그 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은 청년이다. “아름다워요. 정말로.” 아이를 보고 그런가 보다. 나 같은 늙은이한테 그럴 리는 없지. 청년이 그 마음을 읽고 말한다. “아뇨. 저기, 당신이 아름답다고요.” 윤이형 작가의…
자기도 모르게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있다. 그래도 입에서 나오는 말은 일회성이어서 허공으로 증발할 수 있지만 활자화된 말은 계속 상처를 준다. 글이 위험한 이유다. 영국 시인 테드 휴스의 ‘농학교(聾學校)’는 그러한 시다. ‘농학교’는 청각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다룬 시다. …
몇몇 여성이 장애인 공동체를 찾아와 후원금이 든 봉투를 내밀고 공동체 대표인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고맙다는 말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대표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있다가 말했다. “왜 가만히 계십니까? 제게 고맙다고들 하셔야지요.” 누군가에게 봉사할 기회를 갖게 된 것에…
거의 모든 면에서 대조적인 두 사람이 있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그렇다. 한 사람은 혼자서 식사하는 걸 좋아하고, 다른 사람은 어울려 식사하기를 좋아한다. 한 사람은 스메타나의 피아노곡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은 아바의 노래를 좋아한다. 취향의 차이다. 그런데 이것이 관념과 인식의 차이라…
아일랜드 록밴드 U2가 드디어 한국을 찾았다.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공연은 무엇보다도 따뜻함으로 가득했다. 그들의 따뜻함은 ‘실종자들의 어머니들’을 노래할 때 상징적으로 드러났다. 보컬인 보노는 그들의 최고 앨범 ‘조슈아 나무’에 수록된 그 곡을 부를 때 다른 곡들을 부를 때와 달리,…
기관지염으로 죽어가던 그녀는 아들이 보고 싶다고 했다. 아들은 감옥에 있었다. 교정당국이 외출을 허락해주지 않는다고 하자 그녀는 벽을 향해 돌아누웠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다음으로 많이 읽히고 공연되는 희곡 ‘진지함의 중요성’을 쓴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그녀의 아들이었다. 와일드의 …
그는 어린 아들이 거지들을 가리키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구걸을 업으로 삼는다고 말하자 “그들의 마음을 읽는 것은 네 일이 아니다. 네 일은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베푸는 것이다”라며 꾸짖었다. 또한 그는 노동자나 가로 청소부가 같이 식사하자고 하면 고급 양복을 입었으면서도 땅바닥에 앉…
“나는 여행 중에 이 곡을 구상하며 엄청 울었다.” 차이콥스키가 1893년 2월, 조카 블라디미르 다비도프에게 보낸 편지에서 했던 말이다. 그때 구상했던 음악이 그의 마지막 곡이 된 교향곡 6번 나단조였다. 이제는 ‘비창’이라는 별칭으로 통하는 곡이다. 그가 같은 해 10월 28일…